“그레이엄의 신학은 ‘믿고 따르라’는 순종의 신학이다. 그 초석은 성경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라고 하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 전기를 쓴 윌리엄 마틴(미국 라이스대) 교수의 말이다. 성경의 진실성에 대한 그레이엄 목사의 확신은 그의 설교를 듣는 청중의 마음을 깊이 찌르는 강하고 날카로운 칼이었다고 마틴 교수는 언급하기도 했다.
‘오직 성경’의 힘을 의지한 복음전도자
성경에 대한 그의 강인한 믿음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엄격한 장로교 집안과 철저한 신앙교육에서 비롯됐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그레이엄 목사의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성경 교육을 철저히 시켰다고 한다.
자녀들을 목욕시킬 때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시작하사~”로 시작하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읊었다. 벽에는 성경구절이 적힌 달력을 걸어놓고 외우게 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목사나 선교사의 전기를 많이 읽었다.
성경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그의 신앙은 자연스럽게 설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레이엄 목사의 메시지 특징은 짧지만 강력하다. 마틴 교수는 이에 대해 “그레이엄 목사는 가능한 모든 재능과 정성을 설교 준비에 쏟아부었다”며 “시간이 날 때마다 설교책자를 읽었고, 설교연습을 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레이엄 목사는 설교에서 실수도 많이 했지만, 어느 순간 설교에 힘이 실렸고 진실성으로 충만해졌다.
특히 다른 목회자와 달리 그레이엄 목사는 설교문을 매우 자세하게 작성했다. 설교 제목도 ‘번쩍이는 보혈의 깃발 아래의 움직임’처럼 특이하게 붙이기도 했다.
세계적 기독교 대변자로 서기까지
그레이엄 목사가 복음주의권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은 194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진 첫 군중집회 설교를 하면서다. 이듬해 빌리그레이엄전도협회(BGEA)를 창립하고, 영국 런던 전도대회(1954)와 미국 뉴욕 전도대회(1957)를 거치면서 이른바 ‘현대 복음주의 리더’로 등극한다.
이어 1960부터 90년까지 30년간 이어진 부흥운동 ‘4차 대각성운동’의 한가운데 그레이엄 목사가 서 있다. 그는 부흥에 대해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했다. 사람의 힘이나 장치로 얻어질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런 견해는 ‘부흥이 우리의 힘이나 지혜가 아니라 그분에 의지함으로 오게 된다’고 했던 미국의 신학자 조너선 에드워즈(1703~1758)의 입장과 맥을 같이한다.
185개국에서 열렸던 그의 수많은 전도 집회 중 1954년 영국 런던 해링게이 대부흥회는 기념비적이다. 그의 첫 번째 국제 전도 집회였던 이 행사에 약 12주 동안 수십만명이 참여했다. 이를 통해 그레이엄 목사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당시 영국의 처칠 수상까지도 그를 만나고 싶어 학수고대했다고 전해진다.
부흥회에서는 새로운 청중동원 기법도 개발됐다. 소위 ‘안드레식 작전’으로 안드레가 그의 형제 베드로를 예수께 초대한 것(요 1:40~42)을 본 따 2명 이상 짝을 지어 친지나 친구를 집회에 데리고 오는 방식이다. 이 같은 청중 동원 및 집회 방식은 기독교 일부 진영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마틴 교수의 한마디는 그레이엄 목사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레이엄 목사는 결코 신비스러운 은사는 받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과 성경을 전적으로 믿는 믿음과 한번 선택한 사람은 끝까지 신임하는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성실성과 진실성, 정직성, 검소함이 그의 결정적인 은사였다.”
장창일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