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범의 대부’ ‘호통 판사’ 등으로 잘 알려진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가 8년간의 소년 법정 생활을 끝낸다.
천 판사는 21일 페이스북에 부산가정법원에서 부산지법으로 발령받은 인사를 전하며 그동안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특히 원하지 않던 인사 발령에 큰 분노와 슬픔을 드러냈다.
그는 “소년재판을 계속하기 위해 부산가정법원에 잔류하거나 소년보호재판을 할 수 있는 곳을 신청했으나 희망조차 하지 않은 부산지방법원으로 발령이 났다”며 “이로 인해 소년재판을 떠나게 됐고 언제 다시 복귀할지는 기약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결과를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인사’ ‘소년재판전문가에 대한 배려라고는 없는 인사’라고 표현했다.
이어 “인사발령을 접하고 나니 온몸의 기운이 빠지면서 가슴이 아파오고 형언하기 어려운 슬픔이 밀려와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며 “8년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아이들을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삶의 기쁨이 통째로 사라진 듯한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
천 판사는 2010년 2월 처음으로 소년보호재판을 맡을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대한민국 재판 절차에서 가장 후진적인 영역이었다”며 “관심이 집중된 수도권과는 달리 지방의 소년보호재판 사정은 더욱 열악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정 밖에서도 아이들은 제대로 된 감호를 받지 못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비행과 재비행으로 인한 책임은 모두 그들의 책임으로 전가되고 있었다”며 “이런 현실을 지켜볼 수 없어 지난 8년간 소년보호재판 제도와 그를 둘러싼 환경 개선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고 말했다.
또 “국민들께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그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천 판사는 “저는 법관 퇴직시까지 소년보호재판만 하겠다고 국민들 앞에서 공적으로 약속했고 2017년 국정감사 때도 노회찬 의원의 질문에 다시 약속했다”고 기억했다. 지난해 11월 현직 법관 최초로 ‘영산법률문화상’을 수상할 때 했던 발언도 재언급했다. “당시 저의 전문 영역이 소년보호재판으로 축소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질문들에 오히려 감사하다고 대답했다”며 “상을 수상함으로써 저의 입지를 더 확고히 알릴 수 있게 됐고, 계속할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승진도 영예도 필요 없다는 말도 했었다”고 밝혔다.
천 판사는 자신을 대신해 소년보호재판을 맡게 될 후임자에게도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그는 자신이 고집했던 신념을 언급하며 글을 이어갔다. “소년법의 목적은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을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라며 “소년보호재판은 소년법에 기초를 둔 재판이므로 그 목적도 소년법의 목적과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또 “소년법의 목적에 충실하려면 재판에서 아이들을 재판의 객체가 아니라 주인공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재판을 함에 있어서는 소년의 품행과 그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는 부탁도 했다.
마지막으로 “소년보호재판은 마음으로 해야 한다”며 “특히 ‘아비와 어미의 심정’으로 재판을 해야 하는데, 아비와 어미의 심정이란 아이가 건강한 어른으로 자랄 때까지 엄정함과 자상스러움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천 판사는 2013년 SBS 다큐멘터리 ‘학교의 눈물’에 출연해 단호한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근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재판에서는 “미안하다. 용서해라”를 10번 외치라는 판결을 내려 가해 학생이 스스로 사과하도록 이끌었다.
재판 후 천 판사가 피해 학생에게 “내 딸 하자”며 “누가 괴롭히거든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줘라. 그리고 힘들면 나한테 연락해”라고 말한 사연이 알려지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법 사상 8년간 소년보호재판을 맡은 법관은 천 판사가 유일하다. 천 판사는 이제 일반 법정으로 돌아가 또 다른 ‘솔로몬 판결’을 내리게 된다.
문지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