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 대표단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맞춰 보내겠다고 우리 측에 통보하면서 올림픽 피날레와 함께 북핵문제 해결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을 단장으로 하는 미 고위급 대표단도 23일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어서 한반도 정세가 분수령을 맞고 있다.
◇北 대표단, 폐막식→청와대 회동→남북 정보라인 회담?
북한은 22일 오전 남북고위급회담 단장 명의 통지문을 통해 김 통전부장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수행원 6명으로 구성된 고위급 대표단이 25일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부터 2박3일간 방남할 예정이라고 우리 측에 통보했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북측이 통보한 일정이다. 폐막식이 열리는 25일 이후에도 이틀을 더 한국에서 머물기 때문이다. 방남 첫날이자 폐막식이 예정된 25일과 북으로 돌아가는 27일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둘째날인 26일에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등 각종 현안에 대한 논의가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북한 고위급 대표단은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과 별도 회동 등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 여러 차례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자연스러운 기회에 대표단을 만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폐막식에선 이방카 선임고문 등 미국 고위급 대표단과 조우할 가능성이 있다.
앞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고위급 대표단이 9일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맞춰 방남했을 당시 문 대통령은 개회식 행사와 사전 리셉션 등을 통해 이들과 조우한 뒤 다음날인 10일 청와대에서 오찬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제1부부장은 자신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라는 사실을 밝히며 문 대통령에게 방북 요청을 담은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김 통전부장은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과도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서 원장이 북·미 대화 조율 차원에서 미 중앙정보국(CIA)과 긴밀히 연락해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번 폐막식을 계기로 북·미 고위급 대표단이 동시 참석하는 데도 정보라인을 중심으로 일정한 물밑 접촉이 이뤄졌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통전부장의 지위는 우리 쪽의 국정원장으로 알고 있다”며 “서 원장이 카운터파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남북고위급회담 당시 북측 수석대표였던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의 경우 카운터파트였던 조 장관과 향후 남북대화를 어떻게 이어갈지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일정은 없지만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논의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美와 겹치는 건 폐막식과 26일 뿐…북·미 대화 가능할까
이방카 선임고문과 김 통전부장의 조우가 성사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 고위급 대표단은 23일 방한해 청와대 상춘재에서 문 대통령과 만찬 회동을 할 예정이며, 26일 한국을 떠나는 3박4일 일정이다. 북한 고위급 대표단 일정을 감안하면 폐막식이 열리는 25일과 26일이 북·미 간 만남이 가능한 날짜다.
특히 미 국무부는 2주 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한국에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만나려 했지만 북측이 2시간 전 거부 의사를 통보해 회동이 무산됐다고 밝힌 바 있다. 개막식을 전후로 한차례 기싸움을 펼친 양측이 이번 폐막식 참석을 계기로 어떤 형태로든 물밑접촉을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는 북·미 회동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단 선을 긋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방카 선임고문과 김영철 부위원장이 폐막식에 참석하니 당연히 겹치게 될 것”이라면서도 “공식적으로 만날 기회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역할론에 대해서도 “지금 당장 뭘 만들어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서는 북·미 대화가 필수적이라는 게 문 대통령의 인식이다. 때문에 문 대통령이 북·미 고위급 대표단과 각각 회동을 통해 평창올림픽 이후 북·미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중재 노력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