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고문은 23일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을 한다. 상춘재는 각국 정상 등 외국 귀빈을 초청할 때 주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이방카 선임고문에게 ‘정상급 대우’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앞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로 방남한 김여정 제1부부장은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문 대통령과 오찬을 했다. 상춘재와 충무실. 두 공간에는 미묘하게 해석될 수 있는 차이가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22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방카 선임고문이 방한해 문 대통령을 예방하고 만찬을 갖는다”며 “만찬 장소는 상춘재”라고 밝혔다.
상춘재는 청와대 경내 한옥 건물로 정상급 해외 귀빈이 방문했을 때 공식적인 오·만찬 장소로 사용된다. 1983년 상춘재가 준공되기 전까지 청와대 경내에는 전통 한옥식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외빈에게 한국의 가옥 양식을 소개하기 위해 이 공간을 만들었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 방한 때도 상춘재에서 공식 행사를 열었다.
청와대는 “(이방카 선임고문은) 평창올림픽 폐막식의 미국 대표단 단장으로 온다”며 “당연히 극진한 대우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도 지난 10일 청와대를 방문해 문 대통령과 오찬을 가졌다. 문 대통령은 김 제1부부장 등 북측 대표단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맞이한 뒤 본관 충무실로 옮겨 오찬을 함께 했다. 별도 건물인 상춘재와 달리 충무실은 본관 내부의 한 공간이다. 일반적인 ‘접견 행사’에 주로 사용된다.
청와대가 손님을 맞이하는 ‘격’을 굳이 따진다면 상춘재 식사가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대접인 셈이다. 이 같은 ‘공간 선택’에서 청와대의 고심을 엿볼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정부의 목표를 향해 가려면 미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김여정 특사의 방북 초청을 바로 수락하지 않고 “여건을 만들어가자”고 답한 배경에도 이런 현실이 깔려 있다.
청와대는 트럼프 정부를 설득하고 협조를 끌어내는 데 이방카 선임고문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에 정상급 예우로 이방카를 맞이하기로 한 것이다. 또 북핵과 통상을 둘러싸고 한·미동맹에 대한 여러 가지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도 고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겠지만 결코 미국과 멀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전하는 차원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보다 ‘급’이 높은 대우를 선택했을 수 있다.
한편 북측 대표단 오찬 때 청와대는 강원도 황태 요리와 전남 여수 갓김치, 백김치 등을 올렸다. 백김치는 북한을 대표한다. 또 건배주로는 제주의 한라산 소주, 후식은 충남 천안의 호두과자와 경북 상주의 곶감이 마련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반도의 8도 음식이 다 들어갔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