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전날 장 마감 후에
신약 임상실험 중단 공시
‘당일 공시’ 규정 사각지대
전문가 “시점 명확히 해야”
시간 단위 공시 불가능 반론도
한미약품의 ‘올빼미 공시’ 의혹에 투자자들의 분노가 다시 들끓고 있다. 올빼미 공시란 주가 하락 요인이 되는 악재성 내용을 장 마감 후나 주말·연휴 직전 공시하는 것을 말한다. 일부 전문가는 공시기한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미약품은 설 연휴 전날인 지난 14일 장 마감 후 기술 수출했던 BTK면역치료제의 임상 2상 실험이 중단됐다고 공시했다. 투자자 사이에선 올빼미 공시 아니냐는 의혹이 쏟아졌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14일 정오쯤 실험 중단 소식을 들었고, 시장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공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미약품은 2016년에도 계약파기 소식을 징검다리 휴일 전날에 알려 비난을 받았다. 당시 금융 당국은 재발 방지를 위해 계약 해지와 같은 ‘정정공시’ 기한을 익일에서 당일로 단축했다. 한미약품도 홈페이지에 실시간으로 신약 개발 현황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투자자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한미약품의 개발 현황 시스템은 여전히 BTK면역치료제가 임상 2상 실험 중이라고 알리고 있다. 신약 개발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일반 투자자는 시스템에서 실험 중단 사실을 알기 어렵다. 한미약품 측은 치료제의 다른 치료 영역을 계약회사와 찾아보는 중이라고 해명했다.
한미약품은 바뀐 규정대로 실험 중단 소식을 당일 공시했기 때문에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하지만 상당수 올빼미 공시는 주가 급락에 따른 투자자 피해로 이어진다. 한미약품도 연휴가 끝난 첫 개장일에 8% 이상 급락했다. 정성엽 대신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올빼미 공시가 가능하다는 건 내부자정보 이용·정보 불균형의 위험성이 높다는 뜻이므로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당일 공시만 하면 되는 규정이 사각지대를 만들고, 상장사도 이를 악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대신경제연구소가 2016년 12월의 코스피시장 공시를 모두 분석한 결과 장 마감 후 공시가 57.7%로 반 이상을 차지했다. 요일별로도 주말 직전인 금요일 공시가 27.3%로 가장 많았다.
공시시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연구원은 “‘이사회 의결 이후 몇 시간 이내’와 같은 방식으로 범위를 줄여 기업의 개입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거래소 관계자는 “기업의 내부 절차가 다 달라 시간 단위까지 일괄 제한하긴 힘들다”며 “장 마감 이후 공시가 장중 공시를 보지 못한 투자자를 보호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해 11월 한국거래소에 ‘수시공시 규제체계 개선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도 북미와 같이 상장법인의 산업별 특성을 반영한 공시 가이드를 내놓을 필요가 있다”며 “계약·임상·허가·신제품 출시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신기술 개발과정을 투자자에게 설명하고 각 단계 현황과 투자 위험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