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데는 적당한 만족감과 적당한 좌절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아이의 욕구를 들어 주기만 한다면 심리적 성숙에 오히려 독이 될 뿐이다.
P는 초등학교 3학년 남자 아이다. 친구한테 너무 연연하고 상처를 쉽게 받는다. 친구가 조금만 거절을 해도 자기를 싫어하는 거 같다며 집에 와서 걱정을 하고 울고 징징거리며 엄마를 힘들게 한다며 병원을 찾았다. 엄마는 외동인 아이가 외로울 것 같아 유치원 때부터 동네 ‘놀이방’처럼 친구들을 매일 집으로 불러 놀게 할 만큼 정성을 들이고 노력을 했음에도 아이는 늘 친구를 그리워하고 갈증을 느꼈다.
그렇다고 아이가 친구들과 있을 때 썩 잘 지내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에서 놀며 대장 노룻만 하려고 하였다. 놀이의 선택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을 고집하고 P가 선택한 놀이를 친구들이 거절 했을 때는 울거나, 놀이에서 빠져버리고 은근히 방해하는 행동을 하였다. 친구와 놀자고 전화했을 때, 거절을 당하면 친구에게도 계속 졸라대니 친구들도 P를 어린 동생 취급을 하는 듯했다. 혼자 놀지도 못하고 놀 때에는 꼭 친구가 꼭 있어야 했고, 아니면 엄마나 아빠에게 떼를 썼다. 부모는 동생을 낳아주지 못한 미안함에 바쁘고 힘이 들어도 아이가 요구할 때마다 같이 놀아주었다. 부모의 이런 노력에도 아이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친구가 줄어 들고 더욱 외로워졌다.
가정은 아이가 경험하는 최초의 사회이다.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안정적으로 형성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 더불어 작은 사회적 관계를 학습해 나가는 공간이다. 부모와의 관계는 일방적으로 수용되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 입장에서도 형제가 여럿일 때 보다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므로 외동인 아이에게 더 허용적으로 대하여 아이의 요구를 거의 들어주게 된다. 외동아이는 욕구 좌절이나 거절에 대해서 대처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집 밖의 사회로 나아가게 된다.
물론 외동이라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외동아이들은 경쟁이나 비교 당함이 없이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는 경우가 많아 일반적으로 정서적인 안정감과 자존감이 높다. 형제가 있는 경우보다 부모와 상호작용이 활발하여 지능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P의 부모처럼 외동을 키울 때 아이의 외로움을 걱정하여 친구를 계속 불러들여 동네 사랑방처럼 만드는 일이 많은데, 이는 잘못하면 P의 경우처럼 독불 장군으로 성장하게 하기도 한다. 오히려 부모의 지나친 걱정이 자연스럽게 겪을 수 있는 좌절 경험을 막아 예방주사를 맞지 못한 채 사회에 나아가는 꼴이 돼버린다. 외동인 경우 환경의 장점과 단점이 알고 균형적인 부모의 양육 태도가 중요하다.
형제가 있다면 당연히 겪어야 할 일 들, 예컨대 자신의 장난감도 양보하고 같이 나누어야 하는 상황, 엄마가 형제를 돌보느라 바쁘다면 엄마와의 놀이시간도 포기해야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주말에 외식을 할 때도 자신이 원하는 곳을 가지 못하고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러한 포기나 욕구의 좌절이 적당하면 효과가 좋은 약이 되기 때문에 외동으로 양육하는 경우에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좋다. 예컨대 외식이나 여행을 갈 때도 외동인 아이의 의견만 받들어 줄게 아니라 부모의 욕구도 솔직히 표현하여 타협하고 서로 조율하며, 외출 시에도 상황이 된다면 아이를 제외하고 부부만의 외출도 해보며, 집에서도 부부만의 시간을 갖고 그 영역은 아이가 침범 할 수 없다는 집안의 규율이나 규칙을 통해 아이도 자연스럽게 통제를 배우게 된다.
형제가 있거나 없는 것이 다 좋거나 다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환경에서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만족과 좌절을 경험하면서 아이들은 건강하게 성장 할 수 있다. 외동 아이 부모들이여 지나친 죄책감은 벗어 던지라.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