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대표팀의 불화가 사실로 드러났다. 세계인이 지켜보는 축제에서 개최국 대표팀의 불협화음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팀추월 순위결정전과 매스스타트 등 아직 경기가 남아 있는 터라 자칫 팀 불화로 개최국 대표팀의 출전 포기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7·8위 결정전은 21일 오후 8시54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다. 한국의 상대는 폴란드다. 한국은 19일 열린 준준결승에서 8개국 중 7위(3분3초76)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마지막 3번째 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한 기록으로 순위를 가리는 팀추월 경기에서 마지막 주자였던 노선영은 결승선을 통과할 때 김보름·박지우와 간격이 크게 벌어졌다. 경기 후 김보름은 인터뷰에서 “잘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에…”라고 말끝을 흐리더니 고개를 숙여 ‘풉’ 소리를 내고 웃어 대표팀의 불화설에 불을 지폈다.
불화 의혹이 거세지자 대한빙상경기연맹이 기자회견을 마련해 급하게 불을 끄려 했지만 의혹은 더 커졌다. 참석하기로 한 노선영은 불참했고, 김보름은 논란이 된 경기 이후에도 노선영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고 말했다. 대표팀의 ‘노선영 왕따설’에 대한 질문도 백철기 대표팀 감독은 대답하지 않고 넘어갔다.
기자회견 불과 몇 시간 뒤 노선영이 회견 내용을 반박하고 나서면서 불에 기름을 부었다. 노선영은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기자회견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백 감독이 “팀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 말한 데 대해 “전혀 좋지 않았다”며 “서로 훈련하는 장소도 달랐고 만날 기회도 별로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경기에 대한 대화조차 없었다”고도 했다.
김보름과 노선영의 갈등이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빙상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노선영과 김보름은 오래 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며 “둘 관계가 좋지 않은 것은 빙상계에선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이전 경기에서는 레이스 도중 서로 말싸움을 했다”고 덧붙였다.
노선영의 반박에 백 감독은 재반박을 했다. 그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노선영이 맨 뒤로 빠지겠다고 말한 것은 나만 들은 것이 아니다. 왜 굳이 기자회견까지 열어 거짓말을 했겠느냐”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폴란드와의 7·8위 순위결정전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노선영은 전날 “최악의 상황이지만 팀추월 순위결정전에 참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화가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팀워크가 생명인 팀추월 경기를 소화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김보름과 박지우 등 팀추월 대표팀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다. 지난 경기 이후 청와대에 올라온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은 21일 오전 현재 45만8000여명이 동참했다. 역대 최단 기간 최다 동참 청원이 됐다. 백 감독 역시 7·8위전 구상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자칫 개최국 대표팀이 팀 불화로 출전을 포기하는 사태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예정대로 경기가 열린다 해도 문제는 남아 있다. 안방에서 열리는 세계적 대회에서 개최국 대표팀이 응원이 아닌 싸늘한 시선 속에 경기를 펼쳐야 할 수 있다. 대표팀은 관중 소음이 경기에 방해가 됐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내놓았다. 백 감독도 기자회견에서 “함성이라든지 굉장한 응원 때문에 뒤에서 거리가 벌어져 있는지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며 “지도자도 큰 소리로 선수들에게 벌어졌다고 전했지만 (경기장) 분위기 때문에 계속 전달이 안 됐다”고 말했다.
김보름과 박지우는 매스스타트 경기도 남겨둔 상황이다. 백 감독은 “상황을 봤을 땐 (선수들이) 굉장히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안 될 것 같다”며 “여러분도 많은 힘을 보태주셔서 좋은 경기력 발휘하게끔 도와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