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의 여왕은 하나… 김연아 후계자 즉위할 ‘왕좌의 게임’

입력 2018-02-21 00:05
알리나 자기토바(왼쪽)와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AP뉴시스

피겨스케이팅은 ‘동계올림픽의 꽃’이다. 그 중에서 여자 싱글은 가장 빛나는 경기다. 하계올림픽의 마라톤과 비교된다. 승자는 4년간 은반의 여왕으로 군림한다. 1980년대 카트리나 비트(53·독일), 2010년대 김연아(28)가 그랬다.

왕좌는 오직 하나.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해 세계 각국의 ‘피겨 요정’들이 4년 동안 구슬땀을 쏟는다. 음악과 안무로 은반 위를 수놓는 외면의 화려함과 다르게 선수 각각의 내면은 팽팽한 긴장감과 치열한 경쟁심으로 가득하다.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유독 라이벌 구도가 빈번하게 형성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도 여왕 대관식을 노리는 라이벌이 있다.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18)와 알리나 자기토바(15·이상 러시아)다. 21일 오전 10시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시작되는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 출전한다. 선수 30명 중 메드베데바는 23번째, 자기토바는 28번째로 연기한다.

두 선수 모두 도핑 스캔들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퇴출된 러시아 소속이 아닌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 자격으로 평창에 왔다. 이들 중 한 명이 금메달을 차지하면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찬가’가 여왕 대관식에 울려 퍼진다. OAR은 중립국으로 분류돼 러시아 국기를 부착하거나 시상식장에 국가를 울릴 수 없다. 중립국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그동안 남자 싱글, 페어, 아이스댄스에 있었지만 여자 싱글에선 한 번도 없었다.

메드베데바는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우승후보다. 여자 싱글 세계 랭킹 1위이자 세계 최고점 보유자다. 지난해 1월 체코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쇼트·프리스케이팅 합계 229.71점으로 2연패를 달성했다. 이 점수로 김연아가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작성한 세계 최고점(228.56점)을 경신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 속에 김연아를 2위로 밀어내고 금메달을 차지했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22·러시아)와 다르게 메드베데바는 세계·유럽선수권대회와 그랑프리 파이널을 차근차근 정복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렇게 평창까지 달려왔다.

자기토바(오른쪽)와 메드베데바가 지난달 20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유럽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각각 금, 동메달을 들고 시상대에서 웃고 있다. AP뉴시스

대항마는 단연 자기토바다. 평창 동계올림픽과 겹친 올 시즌 시니어로 데뷔한 ‘샛별’이지만 성장세는 가파르다. 메드베데바가 올 시즌 발목 부상으로 잠시 자리를 비운 은반 위를 부랴부랴 점령했다. 올림픽의 전초전 격인 올 시즌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했고, 메드베데바가 복귀전으로 삼은 지난달 러시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메드베데바는 자기토바 옆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뛰어난 기술력과 풍부한 연기력을 모두 갖춘 메드베데바, 기계처럼 정확한 동작으로 고난도 점프를 소화하는 자기토바 사이에서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낯선 올림픽 무대에서 부담감을 얼마나 줄일지가 관건이다. 예열은 끝났다. 지난 11~12일 팀이벤트 여자 싱글에서 쇼트를 책임진 메드베데바는 81.06점, 프리를 맡은 자기토바는 158.08점으로 각각 1위에 올랐다. OAR은 팀이벤트 은메달을 차지했지만 여자 싱글에서 둘의 적수는 없었다. 세계적으로 야유를 받았던 소트니코바와 다르게 둘 중 하나는 김연아의 ‘후계자’로 지목될 가능성이 있다.

‘연아키즈’ 최다빈(18)·김하늘(16)도 이들과 함께 평창에서 올림픽에 데뷔한다. 소치에서 동메달을 차지해 김연아와 나란히 시상대에 올랐던 피겨 베테랑 카롤리나 코스트너(31·이탈리아)는 생애 네 번째 올림픽 무대를 갖는다. 메달이 걸린 프리스케이팅은 오는 23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쇼트프로그램 24위까지만 진출할 수 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