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움당할때 어떤 기분이 드냐면요” 현직 간호사의 슬픈 댓글

입력 2018-02-20 10:37

서울 대형병원 간호사 자살 사건의 지인들이 원인 규명과 관련자의 처벌을 요구하며 온라인 청원을 독려했다. 사망한 간호사와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에 이어 가장 친한 친구도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일명 ‘태움’으로 불리는 간호계의 교육 관습도 없애야 한다는 현직 간호사의 바람도 댓글로 이어졌다.

사망한 간호사의 친구라는 A씨는 18일 한 커뮤니티에 “제가 한때 같이 살다시피 했던 이 친구는 우울증이 있거나 무기력한 성격이 아니다. 한없이 밝고 누구보다 강했던 친구”라면서 “이 친구는 간호사라는 직업이 힘든 것을 다 알고 택했고, 그 누구보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잘 어울렸던 아이”라고 친구를 소개했다.

이어 “대학병원이 있는 학교의 수도권 간호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할 만큼 똑똑했고, 실습과정 중에서도 병원분들과 환자분들께 항상 칭찬을 듣던 영리한 아이였다”면서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아도 학자금 대출을 받아 어머니께 생활비를 드렸던 참 속이 깊던 친구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빨리 간호사로 취직해서 일하고 싶다며 눈을 반짝이던 친구였는데, 그런 친구가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이 저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는 “조문왔던 병원 관계자분이 그 똑똑하던 아이를 실수투성이에 어수룩한 아이를 만들더라”면서 “물론 실수를 하면 혼나야 한다. 그러나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실수를 했다고 혼내는 게 말이나 되냐”고 되물었다.

이어 “언젠가 전화통화 도중 친구에게서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알려주지 않는다. 배워야 되는데 알려주지를 않는다. 그게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사망한 친구가 남긴 마지막 글에 자신을 괴롭힌 선임이 언급돼 있지만 병원과 선임은 잘못을 회피한다고 지적했다.

친구의 글에는 전현직 간호사의 댓글이 이어졌다. 현재 대학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한 네티즌은 “한참 태움당할 때 어떤 생각이 드냐면, 버스탔을 땐 '이 버스가 전복되어서 출근을 안 했으면 좋겠다' 길을 걷다가 '차로에 뛰어들면 출근 안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차라리 일을 그만두지 라는 분들이 있는데, 간호사 그만두면 여전히 간호사다. 일을 그만두고 다른 병원가면 새로운 태움 시작이다”고 적었다. 자살 충동을 많이 느꼈다고 한 그는 “앞으로 더이상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서명한다”고 적었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할 당시 ‘태움’으로 힘들었다는 한 현직 간호사도 “간호사 그만두면 제 모든 것이 끝날 거 같아 버티고 싶었지만 출근하면 욕에 손찌검에 죽고 싶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타고 가는 차에서 ‘사고 나버려라’ 하면서 울며 출근하고 자존감은 떨어지고 그랬다. 도저히 못참겠어서 그만두고 나가려니까 간호사 세계가 좁아서 어딜 가든지 꼬리표 따라가게 할 거라고 협박을 당했다”면서 “다시 일을 하고 있지만 간호사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이도 “창문을 보면 뛰어내리고 싶고 차도로 뛰어들고 싶고 육교가 무너졌으면 좋겠고 생각하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슬픈 선택을 해도 다른 간호사들은 꿈쩍도 안할 거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구렁텅이에 빠졌다”면서 “지금 솔직히 정신과 진료를 받고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정신 붙잡고 산다”고 적었다.

A씨 등 사망한 간호사의 지인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린 진상 규명 서명에는 20일 현재
2만명이 서명을 남겼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