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금관리인’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세 사람이 모두 구속됐다. 이 전 대통령의 ‘집사’로 불리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이 전 대통령이 출연해 설립한 청계재단의 이병모 사무국장이 차례로 수감된 데 이어 다스(DAS) 협력업체 ‘금강'의 이영배 대표가 20일 검찰에 구속됐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 관리인으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이 모두 구속되면서 국정농단과 특활비 수수 의혹이 드러났듯이 이 전 대통령 ‘자금관리 3인방’의 구속이 어떤 수사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검찰 안팎에선 수사에 탄력이 붙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3월 초 이 전 대통령 소환조사가 이뤄지리란 관측은 이제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 이영배, 65억 비자금 조성… 총 92억 횡령·배임
서울중앙지법 오민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0일 새벽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이영배 대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등이었다.
이 대표는 하도급 업체와 고철을 거래하면서 대금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비자금 65억원을 조성하고 감사로 등재된 최대주주 권영미씨에게 급여를 지급한 것처럼 꾸며 11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권씨는 이 전 대통령의 처남인 고(故) 김재정씨 부인이다. 이 대표의 배임·횡령 액수는 총 92억원에 달한다.
검찰은 이 대표가 조성한 비자금 등이 세탁돼 이 전 대통령 측에 흘러들어 갔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대표는 영장심사에서 횡령 혐의를 부인하며 그 자금은 대주주인 권씨가 생활비 등으로 지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2007∼2008년 검찰과 정호영 특별검사팀 수사에서 이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 관리인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그는 다른 핵심 인물 이병모(구속) 청계재단 사무국장과 함께 도곡동 땅 매각자금을 관리한 의혹으로 특검 조사를 받기도 했다.
◇ 이병모 “다스는 MB 것” 사실상 실토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실소유 의혹을 받아온 자동차부품 업체 다스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200억원이 넘는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의 시발점이 됐던 ‘다스 120억원 비자금’ 의혹은 경리직원 조모씨의 개인 횡령으로 결론내려졌다. 그러나 이 역시 회사 차원의 비자금 조성 과정에서 파생된 것으로 확인됐다.
다스가 조성한 비자금이 흘러간 종착지의 실체는 서울중앙지검에서 진행 중인 다스의 140억원 투자금 반환 사건 수사 결과와 함께 확인될 전망이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의 재산 관리인인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이 따로 숨겨둔 외장하드 등 ‘다스는 MB의 것’이라는 의혹을 규명할 핵심 퍼즐 조각을 확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연합뉴스는 “검찰이 이병모 사무국장으로부터 ‘다스와 도곡동 땅 이상은씨 지분은 MB의 차명재산’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서울동부지검에 따로 설치돼 있던 수사팀은 오는 22일부터 서울중앙지검 첨단수사1부로 일부가 합류해 비자금 관련 수사를 이어간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미 다스의 투자금 반환 소송에 청와대가 개입해 삼성이 소송비용을 대납한 정황 등을 포착하고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스와 다스 자회사를 통해 100억원대의 이 전 대통령 차명재산이 조성된 정황도 잡아 수사 중이다. 다스 횡령 사건과 다스 투자금 반환 사건으로 나뉘어 있던 두 갈래 수사가 수백억원대 조직적 비자금 사건으로 합류한 것이다.
앞으로 수사는 자금이 이 전 대통령에게 흘러들어갔는지를 규명하는 작업만 남았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무국장 차에서 확보한 외장하드 등 다스 실소유 입증에 결정적인 증거를 다량 확보했다”면서 “실소유주가 있다면 그 개입 여부는 자연스레 규명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자신이 차명재산을 관리해 왔으며 최근까지 이 전 대통령에게 재산 변동 내역을 보고했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김백준, 특활비 수수부터 사용까지 구체적 진술
검찰은 지난 5일 이 전 대통령의 ‘집사’로 불리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을 구속기소하면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받아내고 쓰는 과정을 모두 이 전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이 모든 과정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이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도 하기 전 범죄 행위의 ‘몸통’으로 적시할 수 있는 것은 최측근인 김 전 기획관의 결정적 진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패막이가 돼 주던 ‘문고리 3인방’ 측근들이 무너지면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됐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수수 사건과 비슷한 흐름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김성호 당시 국정원장에게 특활비 상납을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원세훈 전 원장시절인 2010년에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김 전 기획관에게 “국정원에서 돈이 올 것이니 받아 두라”고 전했다고 밝혔다. 김 전 기획관의 진술이 아니면 드러나기 힘든 정황이다.
검찰은 수사 초기부터 이 전 대통령의 가신과도 같았던 김 전 기획관이 단독으로 국정원 돈을 불법적으로 수수했을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윗선 여부를 집중 조사해 왔다. 금품 수수 사실 자체를 부인했던 김 전 기획관은 김주성 전 국정원 기조실장과 예산관 등을 통해 특활비 전달 과정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수수 과정 등을 털어놓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 시절 국정원 특활비 수수 사건 수사 때도 검찰은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을 통해 특활비 수수 정황을 먼저 파악, 이를 바탕으로 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 등 최측근들의 진술을 이끌어냈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 혐의를 입증하는 데 상당한 자신감을 보였다. 검찰 관계자는 “애매한 상황에서 전직 대통령을 공소장에 적시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김 전 기획관을 국정원 특활비 수수의 공범도 아닌 방조범으로 판단한 것도 모든 것의 중심에 이 전 대통령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