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속 여제’ 이상화(29)가 감동의 레이스를 펼친 지난 18일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장. 은메달을 따낸 이상화가 레이스를 마친 뒤 눈물을 쏟아내자 관중석에서 함께 펑펑 울던 남자가 있었다. 그는 경기장에서 이상화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다가가는 취재진에게 “잠시만요”라고 말한 그는 시상식을 마치고 ‘어사화 수호랑’을 받은 이상화가 링크에서 나가자 비로소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 남자는 이상화의 오빠 상준(32)씨다. 상준씨가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하던 장면은 중계방송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화제가 됐다. 경기 종료 직후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상준씨는 “이만한 동생이 어디 있나요”라고 했다. 이어 “상화가 경기 전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올게’라고 말했는데 역시 약속을 지켰네요”라고 말했다.
이상화는 먼저 스케이트를 타던 상준씨를 따라 7살 때 빙상에 입문했다. 같은 스케이트팀의 남자 학생을 초등학생인 이상화가 다 이길 때에 ‘좀 하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좀 하던’ 동생이 올림픽 무대를 제패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로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남매가 동시에 운동을 하기 어려워졌다. 이때 상준씨는 동생에게 양보했다. 그때의 희생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이상화는 2010년 밴쿠버올림픽과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을 오빠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특별한 금메달 선물에 대해 상준씨는 “저는 아무것도 안했는데 금메달을 2개나 땄네요. 금메달이 집에 있는데, 그래도 상화 거죠”라고 환하게 웃었다. 그는 “사실 ‘현실 남매’로 많이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싸울 때가 있다”고 했다.
상준씨는 경기를 마친 동생에게 “‘고생했어. 수고했어. 매우 고마워’라고 말하고 싶다”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줬고 국민에게 큰 기쁨을 주는 모습이 너무 대견스럽다”고 했다. “오늘도 제게는 상화가 금메달을 딴 거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올림픽 무대를 마친 이상화와 가족은 함께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상준씨는 “올림픽을 끝내고 홀가분하게 가족여행을 가고 싶다. 다함께 휴식을 즐기고 싶은데 여행지는 상화가 원하는 곳으로 갈 것이다”고 전했다. 인터뷰를 마칠 때까지 촉촉하게 젖은 눈가를 계속 만지던 그는 “너무 기뻐요. 제 눈물은 기쁨의 눈물인 동시에 상화에게 고맙고, 고생했다고 말하는 눈물”이라며 바삐 경기장을 나섰다.
강릉=글·사진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