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에 아리랑이 울려 퍼진다. 개회식 남북 공동입장 때 배경음악으로 사용됐지만 경기장에서는 처음으로 연주된다. 한민족의 정서가 담긴 이 곡을 올림픽에서 선보일 주인공은 청년기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낸 두 ‘이방인’ 국가대표 민유라(23)와 알렉산더 겜린(25)이다.
민유라-겜린 조는 19일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쇼트 댄스에서 61.22점을 받았다. 24개 조 가운데 16위에 올랐다. 쇼트 댄스에서 20위 안에 진입하면 프리 댄스로 넘어갈 수 있다. 민유라-겜린 조는 한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프리 댄스에 진출했다. 프리 댄스는 20일 오전 10시 같은 장소에서 시작된다. 메달의 주인이 가려지는 결승전 성격의 경기다.
메달만큼 값진 목표는 이미 달성됐다. 민유라와 겜린은 이번 올림픽에서 아리랑의 아름다운 선율을 세계에 알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가수 소향의 ‘홀로아리랑’의 선율에 맞춰 프리 댄스 안무를 구성했다. 의상은 개량한복이다. ‘홀로아리랑’은 구전민요나 대중가요로 재해석된 아리랑의 여러 곡들 중 독도를 주제로 작곡됐다. 민유라와 겜린은 대회 개막을 앞두고 두고 엉뚱하게 불거진 독도의 정치색 논란을 의식해 가사 일부를 삭제했다. ‘독도야 간밤에’ 부분이다.
피겨스케이팅에서 아리랑을 재해석한 곡이 사용된 적은 있었다. 김연아(28·은퇴)는 2011-2012 시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으로 아리랑을 편곡한 ‘오마주 투 코리아’로 연기했다. 하지만 올림픽 경기장에서 아리랑이 연주된 적은 없었다. 민유라-겜린 조는 아리랑을 처음으로 올림픽 경기용 배경음악으로 사용한다.
피겨스케이팅은 발레를 기반으로 예술성을 접목한 서양식 동계종목이다. 아리랑과 같은 동양 정서의 음악은 미주·유럽계가 대부분인 심판진에 낯설 수밖에 없다. 올 시즌을 앞두고 아리랑을 배경음악으로 채택하는 과정에서 반대 의견도 있었다.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미국 정서를 가진 민유라와 겜린이 아리랑을 얼마나 정확하게 해석할지도 의문이었다. 민유라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재미동포 2세, 겜린은 지난해 7월 법무부의 특별허가를 받아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푸른 눈의 ‘이방인’이다. 하지만 두 선수는 올 시즌 프리 댄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한국적인 요소를 고집했다.
가능성은 입증됐다. 민유라-겜린 조는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지난해 9월 독일 네벨혼 트로피 프리 댄스에서 87.86점을 받았다. 쇼트 댄스(55.94점)와 합산한 최종 점수 143.80점을 받았다. 쇼트 댄스에서 7위에 머물렀지만 프리 댄스에서 순위를 4위로 끌어올렸다. 메달권 문턱까지 진입한 성적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 댄스에서는 캐나다 프랑스 미국이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민유라는 쇼트 댄스를 마치고 키스앤크라이존에서 눈물을 쏟았다. 올림픽 기간 내내 유쾌한 모습만 보였지만 목표를 달성한 순간만큼은 감격에 겨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민유라는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기자들을 만나 “아리랑을 선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이날은 쇼트 댄스 통과를 위해 기술적인 부문만 집중했지만, 프리 댄스에서는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꺼내 아리랑을 연기하겠다”고 말했다.
겜린은 “아리랑을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 귀화한 뒤 한국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보답하겠다”며 “프리 댄스는 줄거리를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