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총기난사… 美고교생 눈물연설 “돈 받은 정치인 부끄러워해야”

입력 2018-02-18 22:51
BBC 캡처

17명이 사망한 미국 플로리다 총기난사 사건에서 살아남은 학생·교사들이 미 입법부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며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총기협회로부터 돈을 받은 모든 정치인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니콜라스 크루즈(19)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자신이 다니다 퇴학당한 플로리다 파크랜드의 머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를 찾아가 AR-15 반자동소총을 난사했다. 이로 인해 학생과 교사 17명이 숨지고 14명이 다쳤다. 그는 사건 직후 경찰에 체포된 뒤 범행을 인정했다.

17일 참사 현장과 가까운 플로리다주 연방법원 앞에서 열린 집회엔 총격 생존자, 학부모, 지역 정부 관계자 100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지금 바로 행동을’ ‘이만하면 충분하다’ ‘당장 공격용 무기를 금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정부에 총기 규제 강화를 촉구했다.


학생인 엠마 곤잘레즈는 “나는 정신분석학자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사건이 그저 정신적 문제 때문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며 “범인이 총이 아니라 칼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죽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범인의 잘못임에도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행동은 멈춰야 한다”며 “애초부터 그(범인)가 총을 구매하게 만든 사람들, 그의 범행 제보를 듣고도 두 손 놓고 있었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내게 와서 끔찍한 비극이었다면서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말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가 전국총기협회에서 얼마나 돈을 받았는지 물을 것”이라며 “물을 필요도 없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3000만달러다”라고 말했다. 또 “총기협회로부터 돈을 받은 모든 정치인들은 부끄워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집회 참가자들은 “부끄러워 하라”고 일제히 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선거 당시 전미총기협회(NRA)로부터 3000만달러(약 424억원)의 기부금을 받았다. NRA는 트럼프 후보 지지에 1140만달러, 힐러러 클린턴 민주당 후보 반대에 1970만달러를 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위터

트럼프 대통령은 사건 뒤 총기 규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범인의 정신 상태와 연방수사국(FBI)의 대책만을 문제 삼았다. FBI가 지난달 범인이 총기 난사를 계획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음에도 끝까지 추적하지 않았다고 시인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FBI를 맹비난했다. 그는 “FBI가 플로리다 고교 총격범이 보낸 그 많은 신호를 모두 놓치다니 애석하다”며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내 대선 캠프와 러시아의 내통 의혹을 입증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내통은 없었다. 이제 기본으로 돌아가서 우리를 자랑스럽게 좀 해달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전국총기협회 총회에 참석해 총기 소유 권리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헌법 제2조와 관련해 “결코 그 권리를 침해하지 않겠다”며 “(민주당이 집권한) 8년 동안 가해진 여러분의 수정헌법 제2조에 따른 자유에 대한 공격은 완전히 끝났다”고 말했다.

곤잘레즈는 이날 총격범의 위험 행동을 경고하는 제보는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린 총격범이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때때로 (제보를) 했다”며 “그를 알던 누구도 그가 총격범이란 사실에 놀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크루즈의 어머니도 그가 전부터 과격한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한다는 이유로 수차례 경찰에 신고한 적 있었다.

아동가족보호국(DFS)과 지역 당국은 작년 크루즈가 스냅챗(SNS)에 팔에 자해를 한 흔적과 함께 총을 구매하고 싶다고 말하는 내용의 영상을 올린 사실도 파악하고 있었다. 아동가족보호국은 크루즈가 총기를 사려고 계획했으나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범인의 총기 구매 계획에 대한 제보를 받았지만 대처하지 못했다고 인정한 FBI는 지난해 9월에도 범인이 자신의 이름으로 유튜브에 공격적인 언사를 올린 것을 제보받았다고 밝혔다.

박세원 기자 sewon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