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때 처음 접한 스켈레톤
빠른 속도와 부상 압박에
전지훈련서 “엄마 무서워”
주변 도움으로 위기 극복 후
역대급 스타트 자랑하며
한국 스켈레톤의 새역사 써
아시아 최초의 올림픽 썰매 종목 금메달리스트가 된 ‘아이언맨’ 윤성빈(24)은 2012년 입문 당시만 해도 스켈레톤을 무서워했다. 평균 시속 120∼130㎞를 넘나드는 스켈레톤을 처음 접한 그에게 속도의 쾌감보다는 부상의 두려움을 안겨줬다. 하지만 그는 두려움을 기회로 바꿨고, 고통의 순간들을 이겨내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스켈레톤 최강자로 거듭났다.
윤성빈은 6년 전 체대입시를 준비하던 서울 신림고의 평범한 학생이었다. 신림고 김영태 체육교사의 전화를 받고 우연히 스켈레톤 대표 선발전에 도전한 뒤 선수가 됐다. 첫 선발전 성적은 30명 중 10위로 저조했지만 178㎝의 키로 농구 골대에 덩크슛을 할 정도로 운동신경이 좋았다. 후배 양성에 열을 올리던 ‘썰매 영웅’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와 3개월간 훈련하며 기본기를 갖췄다. 이후 스타트 능력으로 평가하는 대표 선발전에서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해 겨울 국가대표가 된 그가 해외 전지훈련을 떠났을 때 문제가 생겼다.
윤성빈은 얼음 트랙 위에서 난생 처음으로 스켈레톤을 탔다. 그는 “빠른 속도에 놀라서 무서웠던 것도 있지만 벽에 부딪히는 게 너무 아팠기 때문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첫 새벽 훈련을 마친 뒤 어머니 조영희씨에게 전화를 걸어 “무섭다” “아파서 힘들다”며 흐느껴 울었다.
스켈레톤은 평균 시속 140㎞의 루지보다는 속도가 느리다. 그러나 루지는 누워서 타고 스켈레톤은 엎드려서 탄다. 스켈레톤 선수들은 머리가 썰매 앞쪽을 향하다보니 체감 속도가 시속 400㎞가 넘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썰매 종목 전문가들은 “선수들이 두 눈을 부릅뜬 채 속도감을 느끼다 보니 심리적 부담감이나 부상 위험 등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조씨는 겁에 질린 아들 윤성빈에게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네 스스로 결정해라. 엄마는 너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윤성빈은 이내 냉정함을 찾았다. 그의 지도자들은 “이왕 시작했으니 조금만 더 해보자”고 설득했다. 윤성빈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다는 정신으로 무장한 채 이를 악물고 훈련에 매진했다. 1∼2개월 계속 훈련을 하다보니 썰매를 타는 것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그리고 올림픽 무대를 밟고 싶다는 마음도 조금씩 커졌다.
이후엔 체중을 불리는 게 고통스러웠다. 스켈레톤 종목 특성상 좋은 기록을 내려면 체중을 늘리고 썰매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것이 유리했다. 스켈레톤 입문 당시 윤성빈의 체중은 70㎏ 초반대였다. 살을 찌우기 위해 먹고 또 먹었다. 배고프지 않는데도 음식을 먹는 것은 훈련만큼이나 힘들었다. 그렇게 윤성빈은 86∼87㎏로 체중을 늘렸다. 몸무게 90㎏을 넘길 때도 있었지만 살을 찌운 뒤에는 기록 향상을 위해 엄격한 체중관리를 해야 했다.
지난 16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슬라이딩센터. 윤성빈은 평창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4차 시기에서 50초02의 트랙 신기록을 세우며 1∼4차 합계 3분20초55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2위인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 니키타 트레구보프와의 격차는 1.63초로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큰 격차를 내며 압도적인 우승을 거뒀다. 이제 윤성빈은 최고시속 125.5㎞의 빠른 속도에도 전혀 겁내지 않는다. 그렇게 지구촌에서 가장 빠른 스켈레톤 선수가 됐다.
평창=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