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정의 별명은 ‘괴물’이다. 주니어 시절부터 계속 이렇게 불렸다. 흔히 세계를 제패한 여자 선수들에게 뒤따르는 ‘여제’ ‘여왕’ 등의 별명과는 조금 다르다. 무엇 때문일까?
최민정이 스케이트에 입문한 건 6살 되던 해 겨울이었다. 강습을 받으며 빙판에 처음 발을 디뎠고 초등학교에 올라가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중학교 때까지 동계체전에서 줄줄이 메달을 따내며 국내 최강자로 성장했다. 이때부터 최민정에게는 ‘괴물’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2014년 소치올림픽 당시 국민들은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 심석희(21·한국체대)를 주목했다. 그러나 빙상계 관계자들은 “심석희를 넘어설 만한 선수가 주니어 무대에 있다”며 “평창에서 여자 쇼트트랙은 걱정 없다”고 말했다. 그가 바로 최민정이다. 2014~2015 시즌 시니어 무대에 오른 최민정은 주변의 기대에 부응했다. 심석희와 함께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쌍두마차로 군림했다.
월드컵 대회는 물론 2015년 3월 처음 출전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000m와 3000m 슈퍼파이널 1위에 올라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 세계선수권에서는 2연패라는 업적을 쌓았다. 지난해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6위라는 예상 밖 부진을 겪었지만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기량을 되찾았다.
2017~2018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1~4차 대회에서 최민정의 목에 걸린 금메달은 계주를 포함해 8개였다. 무서운 기세로 경쟁자들을 위협했던 최민정은 지난 17일 여자 1500m 결승에서 1위를 차지해 올림픽 금메달까지 손에 넣었다.
최민정이 일찌감치 ‘괴물’이라는 별명을 얻은 건 자신의 장점을 고스란히 경기에 녹여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경기력과 스피드,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이 그것이다. 최민정은 모든 선수가 꿈꾸는 무대인 올림픽에서도 이런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최민정은 여자 500m 결승에서 실격당한 후 인터뷰에서 “너무 힘들게 준비해 눈물이 날 뿐, 결과에 아쉬운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카메라 각도에 따라 다르니까 심판들 시선에서는 실격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SNS에는 “가던 길 마저 가자”는 글을 올려 메달 사냥 실패의 아픔을 털어냈음을 드러냈다.
대회 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도 어른스러운 답변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최민정은 “2017년 세계선수권대회가 기억난다”며 “시니어 데뷔 후 가장 저조한 성적이 나왔던 경기”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하지만 그 대회를 통해 내가 부진했던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생에 첫 올림픽에 출전한 그에게는 아직 남은 목표가 많다. 20일 여자 3000m 계주가 있고 1000m 예선에도 출전한다.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관왕은 2006년 토리노올림픽 당시 진선유 이후 나오지 않았다. ‘괴물’ 최민정이 12년 만에 한국 쇼트트랙의 영광을 기다리고 있다.
문지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