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시작을 특별하게 맞이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한 해의 시작을 여는 시점엔 더욱 그렇다. 설 연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을 방문한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 성지순례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도를 마음에 새기고 그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그 소망에 다가섰다.
17일(현지 시간) 순례단을 실은 버스가 예루살렘 시온산 남동쪽 키드론(Kidron) 계곡과 게헨나(Gehenna)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비탈길 옆에 도달하자 돔 모양의 회색 지붕에 황금빛 닭 문양이 곧게 서 있는 예배당이 보였다. 예배당 이름인 ‘갈리칸투’는 라틴어로 ‘닭(Galli)’이 ‘노래하다, 울다(Cantu)’란 단어에서 파생됐다. 제자 베드로가 새벽 닭이 울기 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뒤 울부짖으며 통곡한 교회로 알려지면서 ‘닭 울음 교회’ ‘베드로 통곡교회’로 불린다.
예수님을 고소했던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터로 추정되는 이곳엔 1세기 당시 바위를 그대로 둘러싼 채 1931년에 현대식 교회가 세워졌다. 예배당 안엔 죄수를 밧줄에 묶어 달아 지하 동굴로 내리던 돌구멍, 예수님이 심문과 수치를 당했던 감옥 등이 보존돼 있었다. 예배당 안 성화 앞에 선 소강석 목사는 “예수님께선 베드로가 자신을 저주하면서까지 부인하고 회개할 것까지 모두 아셨을 뿐 아니라 베드로의 연약함을 보시며 용서하셨다”면서 “약하디 약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나요.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 받을 수 있나요.”(‘주여 이 죄인이’ 중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찬양에 이어 묵상기도가 시작되자 예배당 곳곳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숙인 성도들은 연신 눈물을 훔쳤다. 궁민경(28·여)씨는 “성지순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자 청년 크리스천으로서의 지향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어 “이 시대의 기독청년들이 분별없이 교회와 기독교를 힐난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도 침묵하며 지나치는 것은 2000년 전 청년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던 것과 다르지 않은 모습일 것”이라고 고백했다.
예루살렘 성으로 걸음을 옮기자 애니메이션 영화 ‘알라딘’에 등장할 법한 성벽과 건축물에 시선이 꽂혔다. 카프탄(검은색 코트)과 스타라이멜(중절모)로 치장하고 수북한 페오트(구레나룻)를 만지작거리며 거리를 오가는 유대인들의 모습은 마치 중세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 세트장을 보는 듯했다. 안내자를 따라 도착한 곳엔 높이 2m가 훌쩍 넘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이곳이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은 본디오 빌라도 재판정이 있었던 장소입니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가 시작되는 첫 번째 지점이지요.”
라틴어로 ‘슬픔의 길’ ‘고난의 길’을 뜻하는 비아 돌로로사는 십자가형을 선고 받은 예수님이 형틀을 메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는 고난의 여정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800여m 에 걸쳐 ‘로마 군사들이 예수님께 가시관을 씌운 곳’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곳’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진 곳’ 등을 지나 ‘로마 병사가 옷을 벗긴 곳’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가 서 있던 곳’ ‘예수님이 묻힌 곳’까지 14개 지점을 지나게 된다. 전 세계 순례자들로 붐비는 이스라엘 내에서도 예수 고난의 숨결을 느끼고자 하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곳 중 하나다.
“가시 면류관을 쓰신 주를 조롱하였네. 채찍 소리에 흥겨워하면서 그들은 소리쳤네. 자칭 메시아를 못 박으라고.”(‘고난의 길’ 중에서)
골고다를 향한 십자가 행진이 시작되자 예수 그리스도 고난의 현장을 담은 노랫말이 행렬을 감쌌다. 2000년 전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것엔 나이와 성별, 직분의 차이가 없었다. 10세부터 80세까지 51명의 순례 단원은 번갈아가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내디딘 걸음을 따라 걸었다. 어른 몸보다 훨씬 큰 십자가를 진 탓에 십자가 끝 모퉁이는 돌바닥에 끌려 둔탁한 파열음을 냈다. 돌계단을 오르내릴 땐 파열음이 커져 망치로 못을 두드리는 소리를 연상케 했다. 십자가 진 자와 고난의 길을 함께 걷는 이들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됐다. 어떤 이들은 통곡하듯 신음소리를 뱉어내기도 했다.
십자가를 진 메시아를 조롱하던 군중이 있던 자리는 전 세계 순례객들을 호객하는 상인들이 대신했다. 엄숙한 행렬이 기다랗게 고난의 길을 수놓는 동안에도 각종 골동품과 기념품을 파는 상점에선 물건 값 흥정에 여념이 없었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고난의 길’ 곁엔 위로 대신 냉소가 그득했다.
십자가를 지고 13번째 지점을 걸은 김동건(11)군은 “예수님은 더 크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채찍질까지 당하며 이 길을 걸어오셨다고 들었다”며 “아직 어리지만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오늘을 기억하면서 신앙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광수(70) 장로는 “단순히 교차된 큰 나무막대 두 개를 짊어진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성도로서의 본질을 깨달은 경험이었다”며 “앞으로 십자가를 볼 때마다 이전보다 더욱 가슴이 뜨거워질 것 같다”고 전했다.
마지막 14번째 지점인 성묘교회에 다다를 때까지 노래는 계속됐다.
“너와 나를 위한 그 애절한 사랑 때문에 주님은 그 길을 걸어가셨네. 고난의 길.”(‘고난의 길’ 중에서)
예루살렘(이스라엘)=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