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지에서도 꽃은 피어난다고 했던가. 남자 스켈레톤의 윤성빈(24)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의 썰매 종목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불과 6년 전만 해도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소년은 스켈레톤에서 재능을 찾은 뒤 날개를 달았고, 이제는 올림픽 최정상에서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가 됐다.
윤성빈은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12년 운명처럼 스켈레톤과 만났다. 그는 엘리트 스포츠를 전혀 접해보지 않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사실 공부에 소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체대 입시를 준비하던 그해 어느 날 아침 9시30분쯤 고교 체육교사였던 김영태 서울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이사의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깼다. 서울체고에서 스켈레톤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리니 곧장 오라는 것이었다. 키가 178㎝인 윤성빈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농구를 할 때 덩크슛을 할 정도로 운동 신경이 뛰어났다.
대표 선발전 현장에 도착한 윤성빈은 장발에 캐주얼 운동화 차림이었다. 급하게 다른 운동화를 빌려 신은 뒤 선발전을 치렀다. 스켈레톤이 뭔지도 몰랐던 윤성빈은 대표 선발전에서 10위를 했다. 처음에 달리기를 했는데 운동을 배워본 적이 없어 기본자세는 나오지 않았다.
후배 양성에 열을 올리던 강광배 교수는 저조한 성적을 거둔 윤성빈에게 스켈레톤을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몸이 좋고 순발력이 뛰어나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였다. 강 교수는 “운동에 소질이 있는데 활용할 줄 몰랐던 어린 시절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스켈레톤을 알려주면 한 아이에게 꿈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윤성빈은 처음 3개월 동안 강 교수의 집에서 숙식하며 스켈레톤 과외를 받았다. 다행히 윤성빈은 스켈레톤에 흥미를 느꼈고, 실력도 급성장했다. 이후 다시 마주한 대표 선발전에서 스타트 평가 1위에 올랐다. 그렇게 그는 기존 국가대표들을 밀어내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때마침 우리나라에서 평창올림픽이 열린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은 윤성빈은 올림픽 정상에 서겠다는 원대한 꿈을 그렸다. 스켈레톤에 입문한지 1년 6개월이 지났을 때 올림픽 출전권을 손에 쥐었다. 생애 처음 나선 2014 소치올림픽에서 16위에 오르며 잠재력을 맘껏 발산했다.
윤성빈은 소치대회 이후에도 이용 대표팀 총감독과 함께 올림픽 금메달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뛰었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는 강력한 우승후보로 평가될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 평창올림픽 직전 열린 7차례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시리즈에서 금메달 5개, 은메달 2개를 따내며 세계랭킹 1위가 됐다. ‘스켈레톤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를 넘어섰다는 평가마저 나왔다. 강점인 스타트는 항상 1~2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조종력은 지난 시즌과 비교해 월등히 좋아졌다.
자신감이 붙은 윤성빈은 평창 무대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15~16일 평창올림픽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남자 스켈레톤 1~4차 경기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금빛을 봤다. 그 어떤 선수보다도 편안하고 리드미컬하게 결승점을 향해 질주했고, 손에는 금메달이 쥐어져 있었다. 합계 기록은 3분20초55. 4차 시기에 달성한 50초02의 기록은 전날 자신이 세운 트랙 신기록을 다시 한 번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동안 한국 썰매는 메달 하나 없는 불모지로 여겨져 왔다. 역대 동계올림픽 썰매 종목에서 한국 선수가 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로 범위를 넓혀도 썰매 종목 금메달리스트는 윤성빈 밖에 없다.
평창=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