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73년 전인 1945년 2월 16일, 윤동주 시인은 차가운 후쿠오카 감옥에서 27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지난해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올해, 윤동주 알리기를 위한 한국인과 일본인의 연결고리가 되는 데 여념이 없던 대한성공회 교무원장 유시경 신부를 8일 만났다.
유 신부는 시인 윤동주가 재학했던 릿쿄대에서 2000년부터 10년간 교목으로 재직했다. 현재 릿쿄대 한국사무소장으로 있으면서 시인 윤동주를 일본에 알리는 일에 힘써왔다. 일본성공회가 설립한 릿쿄대는 윤동주가 유학했던 곳으로, 이곳에서 윤동주는 ‘쉽게 씌어진 시’부터 ‘흰 그림자’ ‘흐르는 거리’ ‘봄’ ‘사랑스런 추억’ 등의 시를 써서 남겼다.
일본에서 한국 시인 김소월과 이육사 등이 유명한 데 반해 윤동주는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최근 들어 윤동주를 추모하는 일본인이 늘어나고 추모 모임 등도 여럿 생겨나고 있다. 2008년 릿쿄대 졸업생과 재학생을 중심으로 하는 ‘시인 윤동주를 추모하는 릿쿄회’가 발족 할 당시, 유 신부는 사무국장으로 참여해 모임의 출발을 도왔던 인연이 있다.
릿쿄대는 일본의 사립대학 중 한국인 유학생 비율이 높은 대학으로 꼽힌다. 재학생 1만3000여명 중 한국인 유학생이 200여명에 달한다. 2010년부터 매년 한국인 유학생 10명에게 60만엔의 윤동주 장학금이 지급되고 있다. 유 신부는 “70년 전 윤동주처럼 지금도 타향에서 밤 비에 잠 못 이룰 유학생들이 이곳에서 그들의 꿈을 피워내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윤동주 서거 73주기를 맞아 오는 11일은 일본 교토, 12일은 후쿠오카, 18일은 도쿄에서 일본인들의 윤동주 추모회가 열린다. 16일에는 릿쿄대에서 추모회가 열려 일본에서 처음으로 윤동주 시 전집을 번역한 이부키 고씨가 ‘시인 윤동주를 기억하며’를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유 신부는 “추모하는 모임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동주는 그의 기독교 신앙을 짐작케 하는 시들을 여럿 남겼다. 유 신부가 생각하는 ‘신앙인’ 윤동주는 어떤 사람일까. 유 신부는 윤동주의 ‘팔복’을 소개했다. 팔복에는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라는 싯귀가 등장한다. 마태복음 5장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것이오’라는 말씀을 윤동주가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라는 시인 자신의 말로 바꿔 쓴 것이다.
유 신부는 “윤동주는 신앙과 삶이 일치된 인물”이라며 “일제강점기에 순교할 각오를 마음에 품었다”고 설명했다. 유 신부는 윤동주를 ‘별의 시인’이라고 불렀다. 몇 백 만년 전 출발한 별빛이 오늘날 우리를 비추듯 윤동주의 시도 지금 이 시대를 밝게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믿음의 원칙에서 물러서고, 신앙의 근본에서 멀어졌다는 비판을 받는 한국교회가 윤동주를 통해 신앙을 바로잡는 계기를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윤동주 서거 73주기, 한국과 일본 연결고리 되어주는 유시경 성공회 신부
입력 2018-02-14 17:48 수정 2018-02-15 1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