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국가대표 노선영(29·콜핑팀)은 그의 말처럼 “기적처럼 찾아온” 올림픽에서 후회 없이 달렸다. 빙상연맹의 행정 착오로 올림픽 출전이 좌절돼 혼자서 몰래 선수촌을 나왔다가 러시아 선수의 출전 무산으로 1500m 출전권을 손에 넣기까지, 평창 동계올림픽에 앞서 누구보다 마음 고생한 노선영은 12일 오후 1500m 경기에 출전해 1분58초75를 기록했다.
노선영은 이날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오벌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500m 경기에서 카자흐스탄의 예카테리나 아이도바와 함께 5조에 편성됐다. 긴장한 탓인지 총성이 울리기 전에 움직이는 실수를 했다. 이로 인한 탓인지 두 번째 출발에선 스타트가 조금 늦기도 했다.
노선영은 이날 첫 300m를 26초44에 주파했다. 이후 700-1100m 구간을 30초87에 끊었고 마지막 400m를 완주한 후 최종 1분58초75를 기록했다. 자신의 1500m 개인 최고기록인 1분56초04에는 못 미치는 기록이었지만, 세 번의 올림픽 중에서는 가장 높은 기록이다.
노선영은 경기가 끝난 뒤 “마음이 이제 후련하다”며 웃었다. 그는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셨다”며 “부담감이 있던 것도 사실이지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노선영은 평창올림픽까지 누구보다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는 지난달 24일 아침 강원도 강릉 오벌(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을 떠나 홀로 서울에 돌아왔다. 그는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혼자 몰래 나왔다”고 말했다. 출전 자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연맹의 실수가 드러나 올림픽 출전 불가 통보를 받고 4일 만이었다.
다행히 기회가 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도핑 스캔들’에 연루된 러시아 선수들의 출전을 불허하면서 노선영은 1500m 출전권을 얻었다.
하지만 노선영은 극적으로 얻은 올림픽 출전에 마냥 반기지 못하고 출전을 고심했다. 그는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이었기에 모든 것을 포기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많은 분들의 응원과 관심이 큰 힘이 되어 제가 용기를 낼 수 있었다”며 “당당하게 올림픽에 출전하겠다”고 밝혔다.
세 번째 올림픽에 출전하는 노선영은 메달권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1500m와 3000m에서 각각 30위와 19위를 했고,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는 3000m에서 25위를 기록했다. 이번에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성적으로는 출전권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러시아 선수 2명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게 되면서 랭킹 34위였던 노선영이 자리를 얻게 됐다.
하지만 노선영에게는 사실상 마지막인 평창 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2016년 4월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 노진규 때문이다. 쇼트트랙 국가대표였던 노진규는 어깨 골육종으로 투병하다 눈을 감았다. 국내 올림픽 선발전을 통과한 뒤 노선영은 세상을 떠난 동생에 대한 질문을 받자 몇분간 눈물을 흘리다가 “부모님과 하늘에 있는 동생을 위해 평창올림픽에서 꼭 메달을 따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선영은 이날 “경기 전까지는 동생 생각이 많이 났다”면서도 “하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가니 경기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또 “제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서 가장 멋지게 타고 싶었다”며 “동생이 봤어도 만족스러운 경기였을 것 같다”고도 말했다.
노선영은 팬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많은 관중 여러분이 응원해주셔서 힘이 났고 타기 전에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며 “그래서 더 잘 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개인 종목을 마친 노선영은 주종목인 팀 추월 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그는 “오늘 경기가 좋은 훈련이 됐다”며 “오늘 경기를 발판삼아 팀 추월에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