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행정관 A씨는 지난해 내부 목표치인 연차 소진율 70%를 달성했다. 70% 이상을 달성하지 않으면 업무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이유가 컸다. 하지만 연차를 쓴다고 한 뒤 일하러 나온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른바 ‘가짜연차’다. A씨는 12일 “내가 쉬면 부서의 특정 업무가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다”며 “어쩔 수 없이 회의에 나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행정관 B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짜연차를 사용하진 않았지만 눈치가 보여 연차를 길게 붙여 쓰기는 어려웠다. 반차 등으로 쪼개 쓰는 경우가 많아 그만큼 효율은 떨어졌다. 오전 5시, 6시 등 새벽 출근이 허다해 반차를 쓴다 해도 근무 시간은 일반 공무원의 ‘9 to 6(9시에서 6시까지)’ 근무 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B씨는 “평일 오후에 같이 어울려줄 사람도 없어 퇴근한 뒤 밀린 피로에 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며 “자고 나면 하루가 끝나있다”고 했다. 이어 “잠이라도 자니 다행이긴 하지만 솔직히 연차를 이런 방식으로 쓰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국민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처 직원들의 지난해 직원 연차 소진율은 각각 80%, 67%였다. 청와대 비서실 직원이 400여명, 경호처가 500여명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전체 평균은 내부 목표치인 70%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지난해 내규를 개정해 연차 소진율이 70% 미만인 경우 근무 평가에 감점을 주도록 했다. 부서장의 소진율이 70%를 달성하지 못한 경우 부원들도 감점 대상에 올렸다. 이 때문인지 비서실 소속 수석 비서관급 이상 간부들의 지난해 연차 소진율도 75%로 나타났다. 한 수석비서관은 “부원들이 감점을 받는다고 하니 지난해 연차 70% 이상을 쓰긴 썼다”고 했다.
연차 소진율 목표 달성은 긍정적이지만 내부 사정을 뜯어보면 지난해 청와대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에 합격점을 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문 대통령은 노동시간 단축이 삶의 질을 극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고 본다. 워라밸 실현을 국정 목표로 삼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신년사에서 “더 이상 과로사회가 계속돼서는 안 된다. 장시간 노동이 일상인 채로 삶이 행복할 수 없다”며 “노동시간 단축과 정시퇴근을 정부의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가짜휴가를 쓴 직원들의 사례를 보고받고 수차례 질책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난해 청와대는 직원들의 워라밸 실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 직면했다. 행정관 C씨는 “업무를 조정하거나 협업해야할 일이 많아 관계 기관과의 저녁 술자리가 잦은 편”이라며 “한번은 술자리에 참석한 보상으로 한 시간 출근을 늦게 해도 된다고 하더라. 그게 아침 6시”라고 했다. 대부분의 부서가 ‘주 6일’ 근무를 하지만 대휴도 주어지지 않는다.
해법으로 거론되는 것은 인력 충원과 업무 조정이다. 대통령 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의 정원은 모두 합쳐 486명이지만 청와대는 이를 아직까지 채우지 못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재 계속 인력 충원을 진행 중”이라며 “최종적으로 정원을 다 채우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꼼꼼한 기준 탓에 검증 작업 자체도 더딘데다가 낙마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무 조정은 내부 업무 평가 결과가 나온 뒤 진행될 전망이다. 평가 결과를 토대로 특정 부서에 업무가 몰린다는 판단이 설 경우 인력을 충원하거나 필요하면 새로운 직제를 신설하는 방식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특정 부서에 일이 몰리고 있다는 생각은 한다”며 “업무 평가를 진행한 뒤 직제 신설 등 조정이 이뤄지려면 6월 정도는 돼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업무 강도가 낮은 청와대 내 일부 부서는 ‘9 to 6’ 근무를 하기도 한다.
고강도의 업무를 당연시 여기는 청와대 조직 문화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물리적 근무 여건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워라밸 정착이 어렵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직원들의 초과 근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긴급한 일을 제외하고는 저녁 6시 이후로는 대면 보고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 대통령 일정이 공개된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9일까지 해외순방, 만찬 행사, 해외 정상 통화 등을 제외하면 6시 이후의 대면보고는 7차례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같은 솔선수범도 직원들의 업무 강도에 큰 영향은 주지 못하고 있다.
행정관 D씨는 “청와대만큼 혹사가 당연시 되는 곳도 없다”며 “정권에 대한 충성심과 사명감이 강한 직원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힘들다 해도 항상 청와대는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곳이고 부러움의 대상”이라며 “오래있을 생각하지 않고 ‘짧고 굵게’ 일하다 나가려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