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주의 주장 부각 기회로 활용
2010년 밴쿠버 때도 대회 기간 내내
“게임 대신 집을” 경제난 호소 집회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지난 9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 인근 원형교차로는 보수단체의 태극기 집회가 점령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반대하는 시위대 틈에는 자원봉사자 유니폼을 입은 김모(74)씨도 있었다. 집회에 참여하는 인파 사이에서 김씨는 ‘셀카봉’을 들고 계속 자신의 모습을 촬영했다. 자원봉사자 신분이면서 집회에 참석하는 게 거리낄 게 없다는 투였다. 김씨는 “2016년 자원봉사자를 지원할 때엔 남북 단일팀 같은 얘기는 없었다”며 “태극기 집회를 주최하는 쪽에서 하는 말이 맞다고 생각해왔다”고 했다.
이목이 집중되는 올림픽 현장이 구호나 성토가 봇물처럼 터지는 ‘정치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만경봉 92호가 정박했던 묵호항, 북한 예술단의 공연이 있었던 강릉아트센터, 남북 선수단이 공동 입장한 올림픽스타디움 부근에서는 어김없이 태극기 집회의 물결이 따라붙었다. 거리 곳곳에서 태극기와 한반도기가 대치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남북관계 외에 다른 주제의 집회도 열리고 있다. 지난 9일 개회식장 6번 게이트 인근에선 개 가면을 쓴 동물보호단체 ‘케어(Care)’의 회원 5명이 ‘나는 음식이 아니다’ ‘개고기 없는 한반도’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있었다. 이 단체의 박소연 대표는 “과연 개고기 문화가 떳떳한 문화인지 고민하기 위해 이런 퍼포먼스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만일 개고기 문화가 떳떳하다면 있는 그대로 알려야 하겠지만, 숨기기에 바쁘지 않았느냐”고 비판했다. 강원도와 평창군이 개고기를 파는 식당이 메뉴를 바꾸면 2000만원을, ‘개고기’ ‘보신탕’이라는 간판 표기를 ‘영양탕’으로 변경하면 1000만원을 지원한 걸 꼬집은 것이다. 이 단체는 올림픽스타디움 안에서도 현수막을 펼치고 기습 시위를 했다.
독도를 둘러싼 논란도 올림픽 현장의 외곽을 달군다. 남북 선수단이 공동입장하며 흔든 한반도기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당시의 한반도기를 준용한 형태다. 독도가 표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김점구 독도수호대 대표는 청와대에 ‘한반도기의 독도 표시’를 청원했다. 그 김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공식 블로그 ‘사람이 먼저다’에서 “다시는 독도를 울게 하지 맙시다. 독도는 작은 섬이 아니라 대한민국입니다”라고 밝힌 점도 언급했다. 그는 “정부가 독도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남북 단일팀 구성을 의논한 지난달 스위스 로잔회담에서 한반도기의 독도 표시 문제를 제대로 짚고 넘어갔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평창올림픽 기간에 한반도기 형태를 바꿀 수는 없다. 다만 ‘독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폐막일을 사흘 앞둔 22일은 일본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다케시마의 날’이다. 한국 정부는 해마다 이날이면 성명을 발표하고 일본에 강력 항의했다.
이런 현상이 평창만의 일은 아니다.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경제난을 호소하는 대규모 집회가 대회 기간 내내 열렸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게임 대신 집을(Homes Not Games)”이라는 구호를 외쳤었다. 2012년 영국 런던올림픽 때엔 멕시코만 기름유출 사고의 주범인 석유회사 BP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후원하는 점을 비난하는 환경단체의 집회가 잦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의 티베트 침략을 비난하는 국제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한국은 물론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올림픽 성화 봉송경로를 따라 규탄 집회가 열렸었다.
평창=이경원 심우삼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