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분이 고생했다. 정말 감사드린다.”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 도시로 평창이 확정된 후 김연아 전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가 언론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자크 로케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평창’을 외치자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였던 김연아는 눈물을 흘리며 “내가 실수하면 큰일 나는 상황이라 부담이 됐다”고 토로했다.
김연아가 유치부터 개최까지 홍보대사로 함께해 온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9일 오후 열렸다. 김연아는 성화 봉송 마지막 주자로 참여했다. 성화는 전이경 전 쇼트트랙 선수, 박인비 전 골프선수, 안정환 전 축구선수 순서로 스타디움을 한 바퀴 돈 뒤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박종아, 정수현 선수 손을 거쳐 김연아에게 건네졌다. 스케이트를 신고 기다리던 김연아는 우아한 동작으로 성화대에 불꽃을 피웠다.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다시 성화가 타오르는 순간이었다.
김연아는 평창 올림픽 유치 1호 홍보대사로 임명되며 2009년 4월 평창 올림픽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평창은 캐나다 밴쿠버와 러시아 소치에 밀려 두 번이나 올림픽 유치에 실패한 상태였다. 유럽 등 동계 스포츠 강국과 비교해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가 부족한 것이 문제였다. 강원도는 세 번째 도전의 ‘히든카드’로 2009년 세계피겨선수권 대회 여자 싱글 부분에서 우승한 김연아를 꺼냈다. 평창의 경쟁 상대는 독일 뮌헨과 프랑스 안시 등이었다.
김연아는 ‘2010년 캐나다 밴쿠버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다. 박용성 당시 대한체육회장은 홍보대사 위촉식이 있은 다음날 “김연아는 아직 공주에 불과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야 여왕이 되는 것"이라며 "김연아 선수가 밴쿠버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프리젠테이션에 직접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약 9개월 후, 박용성 전 회장의 말처럼 김연아는 밴쿠버에서 동계올림픽의 꽃이라고 불리는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을 손에 쥐었다. 심지어 세계신기록까지 세우며 월드 스타로 입지를 굳혔다. 스타 선수의 부족으로 이미 2003년, 2009년 올림픽 유치에 실패한 상황에서 IOC에 보여줄 한 방이었다.
이후 올림픽 홍보대사 활동에 열중하던 김연아가 선수 은퇴를 할지 모른다는 전망이 조금씩 나왔다. 17년 선수 생활의 목표였던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뒤였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밴쿠버 올림픽이 끝나고 2개월 뒤인 4월 MBC ‘무릎팍 도사’에 나와 “올림픽 이후 슬럼프 때문에 체력적, 정신적으로 무척 괴로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다시 심기일전에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결과는 세계 2위였다. 김연아는 대회 이후 “밴쿠버 올림픽이 끝나면 내 선수 생활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금메달을 따고 한 달 뒤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라 했다”며 “죽어도 못하겠다고 난리를 쳤지만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조선일보에 밝혔다.
김연아는 그해 7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올림픽 평창 유치를 위한 최종 프레젠테이션 연설자로 나섰다. 카타리나 비트 전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있는 독일과 김연아가 있는 한국이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며 라이벌 경쟁이 한창일 때였다. 당시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김연아가 나타난 뒤로 비트의 빛이 가렸다”며 “IOC 위원들은 굉장히 점잖으신 분들인데 왕족이나 연로하신 분들이 체면을 불구하고 김연아와 사진을 한번 찍으려고 줄 서 있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후기를 전했다.
연설은 성공적이었다. 김연아는 “저는 동계스포츠에 대한 대한민국의 노력이 낳은 살아 있는 유산입니다”라고 말하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결국 평창은 1차 투표에서 95표 중 63표로 과반을 획득해 세 번째 도전 만에 압도적으로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1차 투표에서 개최지가 확정된 것은 역대 2번째였다.
김연아는 2014년 11월 다시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 임명됐다. 그는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 위촉돼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동계 스포츠인으로서, 나아가 한국인으로서 우리나라에서 하는 올림픽에 도움이 돼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후 그는 평창올림픽을 알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지난해 4월 성화봉송 경로 및 봉송 주자 선발계획 발표 때도 홍보대사 중 유일하게 참석했다. 같은 해 10월 그리스 아테네 성화인수식도 참여했다.
이어 11월 유엔 본부를 찾아 평창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호소한 것도 김연아였다. 김연아는 연설에서 “평창 올림픽이 남북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전 세계와 인류를 위한 올림픽 평화 정신을 나눌 최고의 플랫폼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호소했다. 기자회견에서도 “피겨 종목에서 북한이 출전권을 얻었는데 선수 시절에는 만나보지 못했던 북한 선수들이 꼭 경기에 참가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은 “휴전결의안 채택에 김연아 유엔 연설이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김연아는 성화봉송 마지막 주자로 나선 것에 대해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며 “얼음 위에서는 오랫동안 스케이팅을 탔지만 높은 곳에서는 처음이었다. 실수 없이 할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10일 평창 메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개막식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김연아의 노고에 보답하듯 개막식이 하루 지난 뒤에도 주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김연아 성화봉송’이 떠나지 않았다. 외신도 김연아에 대해 보도하며 “환상적이다”라고 극찬했다. 올림픽 유치부터 약 10년간 묵묵히 함께해 온 김연아의 노력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