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예술단의 역사적인 공연이 8일 오후 8시 강원도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에서 열렸다. 북한 예술단의 방남 공연은 2002년 8월 서울에서 열린 8·15 민족통일대회 이후 처음이다. 공연에 참여한 북한 예술단원은 140여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은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 성공 기원 특별공연’에서 이선희의 ‘J에게’,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등 한국 가요, ‘반갑습니다’ 등 북한 가요, ‘백조의 호수’ 같은 클래식을 선사했다. 공여장 900여석이 비좁게 느껴질 만큼 무대를 가득 채운 삼지연관현악단의 연주는 좌중을 압도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고 힘이 느껴졌다.
◇남북 유명 가요에 클래식 공연까지
첫곡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였다. 한복을 차려입은 8명의 여가수가 힘찬 목소리와 호응을 유도하는 율동으로 공연 초반부터 관객을 사로잡았다.
다음 곡으로는 겨울 풍경을 역동적으로 묘사한 북한 노래 ‘흰눈아 내려라’가 이어졌다. 이 곡은 지난달 1일 북한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신년 경축공연 ‘조선의 모습’의 대표곡이다. 예술단은 한국 관객의 정서에 맞춰 ‘설눈’이란 단어를 ‘흰눈’으로 개사해 곡을 불렀다. 겨울 소나무 위에 잔설이 쏟아지는 영상이 펼쳐졌고 천장에서는 은색 가루가 쏟아졌다. 평화를 형상화한 ‘비둘기야 높이 날아라’와 전자악기의 경쾌한 반주를 곁들인 ‘내 나라 제일로 좋아’ 등 북한 노래들이 이어졌다.
초반부 북한 노래가 이어지다 다섯 번째로 한국 노래가 나왔다. 예술단은 남북의 동질감을 끌어올리려는 듯 당초 예고했던 대로 한국의 가요와 민요, 팝송이 많이 넣으면서 과거의 공연과는 차별화를 뒀다. 처음 나온 한국 노래는 여성 2중창이 코러스와 함께 소화한 이선희의 ‘J에게’였다. 이어 왁스의 ‘여정’과 북한에서도 인기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도 이어졌다. 혜은이의 ‘당신은 모르실거야’도 선사했다.
핫팬츠 차림의 가수 5명은 ‘달려가자 미래로’라는 빠른 템포의 노래를 불렀다. 한국의 걸그룹을 연상시키는 경쾌한 율동을 보여주면서 공연장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유명 클래식 곡들을 편곡해 연이어 들려주는 관현악 연주도 이어졌다.
공연 후반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다시 만납시다’ 등 통일 노래들로 채워졌다. 노래가 끝난 뒤 여성 가수들은 손을 흔들면서 “다시 만납시다”를 거듭 외쳐 울림을 줬다. 드레스 차림의 출연진은 무대 아래로 깊숙이 허리를 숙여 관객과 악수했다.
◇관중 800여명, 뜨거운 박수와 환호
이날 공연에는 사회적 약자, 실향민, 이산가족 등 252명이 초청됐으며 560명은 추첨으로 선발돼 총 관객 812명이 공연을 봤다. 노래와 연주가 끝날 때마다 객석에선 큰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공연 무대는 객석과의 거리가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많은 연주자와 가수들을 한 무대에 올리기 위해 앞쪽의 좌석 일부까지 무대를 넓힌 듯 보였다.
전국에서 모인 6·15 남측위원회 소속 회원 50여명은 공연 6시간 전부터 강릉아트센터에 모여 한반도기를 흔들며 북한 예술단 공연을 응원했다. 경남에서 왔다는 교사 김윤선(가명·43)씨는 “이번 공연이 7000만 겨레가 하나 되는 통일로 나아가는 계단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전에 거주하는 실향민 이건삼(74)씨는 “황해도 사리원이 고향이며 6세 때 이남으로 내려왔다”며 “예술단 공연에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이어 “생전 통일이 된다며 고향에 묻히고 싶다”고 전했다.
공연을 관람한 이외수 소설가는 “파워풀한 음악에 놀랐고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북한 예술단의 메시지가 명확했다”며 “특히 공연 도중 한국 노래인 ‘홀로아리랑’이 나오는 순간 가슴에 뜨겁고 뭉클한 무엇이 전해졌다”고 말했다.
객석에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문순 강원도지사, 최명희 강릉시장, 유은혜 의원,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진옥섭 한국문화재단 이사장 등 정계와 문화계 인사들이 자리했다. 이들은 공연 시작 전 삼지연관현악단의 현송월 단장과 등장해 중앙에 착석했다.
권준협 기자, 문화체육관광부 공동취재단 ga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