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는 성폭력이 벌어져온 법조계의 민낯을 세상에 알렸다. 숨어 있던 사회 곳곳의 피해자들이 너도나도 일어섰다. 동행하겠다는 응원군도 많다. 약자가 노리개로 취급되는 검은 뿌리를 흔들어 뽑자고 한다. 대단한 용기였다.
이렇게 ‘ME TOO’를 외치는 이들에게 ‘WITH YOU’로 다가간 지 얼마나 됐다고 이마저도 조롱거리가 됐다. 그동안 억눌러온 이야기를 이제야 풀어놓기 시작한 이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손가락질이다.
◇ ‘가혹한 조롱’의 시작
미투 운동은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성폭력 피해 경험을 털어놓는 캠페인이다. #미투 #METOO 등의 해시태그를 사용해 검색하는 모두가 열람해 볼 수 있도록 한다.
이를 조롱거리로 여기는 이들이 있다. 성폭력 경험을 힘겹게 털어놓은 피해자들을 겨냥해 ‘미투 운동’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조롱성 글이 올라오고 있다.
한 네티즌은 돼지껍데기 사진을 올리면서 “#미투 오늘 저도 성희롱 당했습니다. 돼지껍질을 주문했는데 꼭지가 웬 말입니까? 이거 어디다 신고하면 됩니까?”라는 글을 올렸다.
대놓고 저격하는 글도 많다. 한 페이스북 사용자는 서지현 검사 인터뷰 방송 장면을 의도적으로 모자이크해 올렸다. 그리고 “범죄 신고는 112, 8년이나 기다릴 필요 없습니다”라며 “경찰은 3분 거리에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익명으로 글을 쓰는 공간은 더 심하다. 대표적인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는 지난 1일 #미투 게시판이 생겼다. 이를 두고 “미투 게시판 때문에 커뮤니티 활동을 접는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법관을 준비하는 예비 법조인의 온라인 커뮤니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앞으로 자신이 몸담아야 할 곳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또 자신의 선배가 될 지도 모르는 선배 검사 이야기였다. 그렇게 시작된 운동을 겨냥해 조롱성 글이 올라온다.
3일에는 “미투 사건은 여성이 사람이 되는 과정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는 글이 게시됐다. 글쓴이는 “미투, 성희롱은 남자들이 군대에서 당해왔고 이런 과정을 통해 제대한 남자에게 여자들이 ‘사람이 됐다’고 했다. 이제 막 사회에 진출 중인 여자들도 (미투운동을 하는 걸 보니) 드디어 사람이 되고 있구나 싶다. 그래도 우리보다 단결력은 강해 보이니 지리멸렬하지 말고 끝까지 한번 싸워보라”고 적었다.
이밖에도 미투 운동을 조롱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투 남자화장실에 들어오는 청소아줌마들 강제추행으로 처벌 받길 원한다.
지겹다 #미투 지친다 #미쓰리
꼴페(극단적 페미니스트)들아 기분 나쁘면 성희롱이냐
어떤 의도로 이런 글을 올리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미투 운동’의 의미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가볍고 얄팍하게 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 다시 ‘침묵’이 찾아오지 않도록
피해자에게 조롱을 보내는 것은 자신이 피해자보다 ‘우위’에 있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 한국이 성폭력 피해자를 그동안 어떻게 대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런 분위기는 어렵게 용기 낸 피해자들의 입을 더 철저히 막을 수도 있다.
미투운동이 점점 성 대결 양상을 띠는 것 역시 문제다. 성폭력이라는 사안의 본질을 가리는 행위다.
미투 운동을 조롱하는 소수가 의미를 변질시킬 우려는 있지만 그래도 아직 대중 다수는 이를 지지하고 있다. 각종 커뮤니티 미투 게시판에도 아직까지는 조롱성 글보다 진지하게 토로하거나 이를 공감하는 글이 더 많다.
여론조사만 보더라도 지지 의견이 74.8%로 4명 중 3명꼴이다. 미투를 외치는 피해자들을 지지하는 ‘위드유(With You)’ 바람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검찰도 거들기로 했다. 과거부터 일어난 내부 성추문들을 원점부터 재조사할 계획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검찰 직권조사에 나섰다. 사상 처음이다.
미투 운동이 번지면서 성폭력에 폐쇄적이던 사회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조롱’이 아니라 ‘공감’이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