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겠다고 했던 최영미 시인…일주일 전 심경글 재조명

입력 2018-02-07 07:09 수정 2018-02-07 08:06

최영미 시인이 문단 내 성추행 실태를 폭로한 가운데 서지현 검사 인터뷰 직후 착잡한 심경을 밝힌 페이스북 글이 재조명 되고 있다. 그는 문단엔 성폭력이 일상화됐다고 폭로하면서도 진실을 말해도 누가 믿겠냐고 털어놨다.

최 시인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지현 검사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며 “뉴스를 보며 착잡한 심경”이라고 밝혔다. “문단에는 이보다 더 심한 성추행 성희롱이 일상화 돼 있다”고 밝힌 그는 “하지만 그 시절의 이야기를 지금 할 수 없다. 이미 나는 문단의 왕따인데 내가 그 사건들을 터뜨리면 완전히 매장당할 것이기 때문에?”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거의 죽은 목숨인데 매장 당하는 게 두렵지는 않다”고 했다. 다만 귀찮다고 표현했다. “저들과 싸우는 게. 힘 없는 시인인 내가 진실을 말해도 사람들이 믿을까?”라고 반문한 최 시인은 “확신이 서지 않아서”라고 부연했다.

“내 뒤에 아무런 조직도 지원군도 없는데 어떻게? 쓸데없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다”고 한 최 시인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더 무시무시한 조직인 문단”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일주일 만에 최 시인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문단에 만연한 성폭력 실태를 폭로했다. 앞서 최 시인은 지난해 12월 계간 ‘황해문화’ 겨울호에 게재한 시 ‘괴물’을 통해 성추행 사실을 묘사했었다.

시에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으로 시작된다. “교활한 늙은이”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 “노털상 후보로 En은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등의 표현이 담겼다.

당사자로 거론된 원로 시인은 6일 한겨례와의 인터뷰에서 “아마도 30여년 전 어느 출판사 송년회였던 것 같은데 여러 문인들이 같이 있는 공개된 자리였고 술 먹고 격려도 하느라 손목도 잡고 했던 것 같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오늘날에 비추어 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말했다.

이날 방송에서 최 시인은 이를 언급하며 “그 문인이 내가 처음 떠올린 문인이 맞다면 굉장히 구차한 변명이라고 생각한다”며 “데뷔 때부터 많은 성추행과 성희롱을 목격했고 대한민국 도처에 피해자가 셀 수 없이 많다”고 폭로했다.

최 시인은 또 “여성 문인이 권력을 지닌 남성 문인의 성적인 요구를 거절하면 뒤에서 그들은 복수를 한다”며 “그들은 문단의 메이저 그룹 출판사‧잡지 등에서 편집위원으로 있는데 자신의 요구를 거절한 여성 문인에게 원고 청탁을 하지 않는다. 작품이 나와도 그에 대한 한 줄도 쓰지 않고 원고를 보내도 채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시인은 이어 “문제는 그녀들의 피해가 입증할 수도 없고 작품이 좋지 않아 거절한 것이라 하면 하소연 할 곳도 없다”며 “작가로서 생명이 거의 끝나버린다”고 부연했다.

방송 직후 최 시인의 페이스북엔 응원 댓글이 이어졌다. 해당 게시물은 삽시간에 수십건의 공유도 이뤄졌다. “응원한다” “용기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