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벨라 하디드와 켄달 제너. 1월 말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파리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 패션위크에서 자주 보이는 모델이죠. 스무 살 언저리의 젊은 모델이 유명 패션쇼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국 나이로 88세의 백발이 성성한 모델이 유명 패션쇼의 마지막을 장식한 모델이라는 사실은 듣고도 참 놀랍습니다.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튀는 모델을 섭외한 게 아니냐는 생각은 접어두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그 모델은 모델로서의 가치를 당당히 뽐냈습니다.
뉴욕 출신 모델 카르멘 델로레피체(Dell'Orefice). 1931년 6월에 태어난 그는 1946년부터 현재까지 현역으로 활동 중입니다. 178㎝의 장신입니다.
델로레피체는 지난달 24일 파리 패션위크에서 열린 중국의 디자이너 구오 페이(Guo Pei) 쇼에 마지막 런웨이의 주인공이었습니다. 크리스털과 레이스로 장식된 붉은색 드레스는 입었습니다. 활짝 핀 공작새의 깃털 같은 가운이 델로레피체를 화려하게 장식했고요. 젊은 남성 모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델로레피체는 무대를 누볐습니다. 여왕이 살아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라고 떠올릴 법한 장면이었습니다.
델로레피체는 세계에서 가장 나이든 현역 모델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합니다. 이번 파리 패션위크에서 다른 브랜드가 나이든 모델을 내세웠지만 나이나 무대 매너 등 모든 면에서 델로레피체를 넘어서긴 힘들었습니다. 미국 여배우 로렌 허튼은 2016년 9월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위크 보테가 베네타 쇼에 카메오로 등장해 지금껏 회자되는데, 델로레피체의 무대 역시 패션계의 역사에 남을 한 장면임이 틀림없습니다.
델로레피체와 같은 노령의 모델이 현역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은 모든이들에게 희망, 그리고 자극으로 다가옵니다. 델로레피체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직업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드러낸 적이 있습니다.
“105세까지 이 일을 할 생각입니다. 그때 다른 직업이 좋아진다면 그걸 찾을 거예요.”
다음은 5년 전 델로레피체가 한 패션쇼에 선 모습을 담은 영상입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