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 ‘괴물’ 문단 ‘미투운동’ 확산시키나

입력 2018-02-06 17:39 수정 2018-02-06 21:10

검찰 내 성폭력 폭로로 촉발된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이 문단으로 확산되고 있다. 문단 내 성추행을 고발하는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이 주목받는 가운데 신임 한국시인협회장의 성추행 전력이 논란이 되고 있다.

최 시인이 지난해 12월 계간지 ‘황해문화’ 겨울 특집호에 게재한 ‘괴물’이라는 제목의 시는 ‘En선생’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에서 ‘En선생’은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고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른다고 묘사된다. ‘En선생’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다만 최 시인은 이 시에서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라고 표현했다. 그가 권위 있는 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고 있는 인사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 시인은 6일 이 시와 관련해 국민일보에 “문단과 사회에 만연한 우상숭배에 대한 풍자시”라며 “시 ‘괴물’을 문학작품으로 봐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시 ‘괴물’이 문단 내 ‘미투 운동’ 촉매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단에는 일부 유력 문인의 성추행과 성희롱 등에 대한 얘기가 공공연하게 회자되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한국시인협회가 성추문 논란이 있었던 인사를 신임 회장으로 선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도마 위에 올랐다. 협회는 지난달 23일 평의원 회의에서 감태준(71) 시인을 제42대 회장으로 뽑았다고 이날 밝혔다. 원로와 중견 시인 중심의 이 협회는 전 회장 등 원로 9명으로 구성된 평의원 회의에서 임기 2년의 회장을 선출해 왔다.

문단에 따르면 중앙대 교수로 재임하던 감 시인은 2007년 제자 성추행과 성폭행 의혹으로 학교에서 해임됐다. 성폭행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그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해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성추행 논란 등에 따른 해임은 정당하다”며 그의 청구를 기각했다.

새 회장은 다음 달 31일 총회에서 취임할 예정이나 성추행 논란이 알려지면서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다. 협회 관계자는 “신임 회장 선출에 대한 건에 대한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며 “문의하는 분들의 연락처를 일일이 전달하기도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본인의 입장을 듣기 위해 복수의 통로로 연락을 취했으나 감 시인의 회신은 없었다.

1972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감 시인은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을 지내고 대표적 문예지 ‘현대문학’ 편집장과 주간으로 일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