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비리를 제기하니까 은행들이 ‘왜 민간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느냐’고 강변하더라. 이 점이 가장 황당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6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렇게 말했다. 심 의원은 지난 2일 하나은행이 특정 대학 출신을 합격시키려고 면접점수를 조작한 내용을 공개했다. ‘SKY 대학’ 출신자는 면접점수를 올려 합격시키고 대신 다른 대학 출신자는 점수를 깎아 떨어뜨렸다는 거였다. 간담회는 이처럼 금융권 채용비리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일과 소회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심 의원은 “민간기업이라도 공개채용은 수많은 지원자와의 약속, 일종의 사회계약이다. 그 기준과 다른 기준으로 채용하는 건 약속과 계약을 저버리는 일”이라며 “이런 최소한의 인식이 결여돼 있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또 “대부분의 은행에 공적자금 투입됐는데, 아쉬울 땐 국민 지원을 요청하고 사회적 책임이 따르는 일에는 자율성을 말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대검찰청은 5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대구은행 부산은행 광주은행의 채용비리 자료를 넘겨받아 관할 검찰청 5곳에 배당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각각 서울남부지검과 서울서부지검이 수사한다. 대구은행과 부산은행, 광주은행 사건은 각각 대구·부산·광주지검이 맡는다. 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등에서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과 지난달 채용비리가 의심되는 사례 22건을 적발하고 이 중 5곳을 수사의뢰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이른바 ‘VIP 리스트’를 관리하며 채용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하나은행에선 VIP 리스트에 들어간 55명이 2016년 신입행원 공채에서 모두 서류전형을 통과했다. 필기전형 후 남은 6명도 임원면접 점수 조작을 통해 전원 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엔 하나카드 전 사장 지인의 자녀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은행도 2015년 신입행원 공채에서 VIP 리스트에 오른 20명을 서류전형에서 모두 합격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면접까지 간 지원자는 모두 합격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종손녀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부산·광주 은행에서도 은행 임직원과 관련된 지원자들이 합격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두 은행은 금감원의 조사 결과 발표 이후에도 “채용비리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심 의원은 “채용비리에 연루된 은행들의 해명에는 진실이 하나도 없다. 입점은행이라서 가산점을 줬다는 말도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했다. KEB하나은행은 SKY 대학 출신자의 면접점수를 높여준 데 대해 “입점 대학 출신자에게 가점을 부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심 의원은 “연세대는 입점 대학이 아님에도 점수를 올렸고 명지대는 주거래 은행임에도 탈락을 시켰다”고 지적했다.
KB국민은행은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의 종손녀가 서류전형과 1차 면접에서 합격자 중 최하위권이었음에도 2차 면접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 국민은행은 채용 전형이 단계마다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기에 그렇다고 해명했다. 심 의원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런 전형 방식이라면 공개채용 때 지원자에게 알렸어야 한다. 앞으로 제도 개선을 하겠다는 답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심 의원은 “금감원이 조사한 11개 은행 모두에서 크고 작은 채용비리와 불공정 관행이 드러났다”며 “현재 은행별로 관련 사항을 보고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은행 국정감사서 채용비리를 제기한 이래 이런 비리의 근절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유는 청년들이 금수저 흑수저 헬조선을 외치는 걸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년들에게 공정한 출발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발본색원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