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6세 여자 아이다. 몇 달 전부터 자다가 깨서 심하게 비명을 지르고 운다고 했다. 공포에 떨며 악을 쓰고 식은 땀도 흘리며 불안해하는데 신기하게도 아침에 일어나면 기억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일 주일에 한번 정도였지만 차츰 빈도가 잦아졌다. 부모는 처음엔 아이를 달래고 어르기도 해보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요즘엔 거의 밤마다 깨어서 소동이 일어나니 부모도 거의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맞벌이 직장생활을 하는 부모는 안 그래도 고달픈데 잠도 제대로 못자고 직장에 나가게 되니 회사일도 엉망이고 동료들에게도 피해를 주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J의 이런 증상은 잠들고 3시간 쯤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가끔은 그냥 넘어가지도 했지만... 낮에 야단을 맞으면 그날 밤에는 더욱 심해졌다. 사실 아이는 입이 짧고 밥을 먹는 양도 지나치게 적어 야단을 많이 맞는다.
미국 정신의학회 진단 기준 편람에 의거, 증상학적으로는 J의 수면 문제를 진단하면 ‘야경증’이다. 야경증은 꿈을 꾸지 않는 시간인 비렘(NREM) 수면 주기에 나타나는 수면 장애의 일종이다. 악몽과 달리 수면 초반 3분의 1 앞쪽에서 가장 흔하고 아침에 기억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남자 아이에게 조금 더 많다. 5세 이하의 유아는 아직은 뇌의 발달상 수면의 주기가 안정이 되기 전이기 때문에 정상적으로도 야경증 증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빈도가 너무 잦거나 5세 이후에 일어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면 치료를 해야 한다.
J의 경우 증상학적 진단보다는 심리역동적인 진단이 더 필요한 아이였다. 잠자는 문제, 먹는 문제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중요한 기능이다. 유소아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양육자와의 ‘애착이 불안정’한 아이들은 수면 문제, 식습관의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J의 애착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부모를 상담해 보니 부부는 육아문제로 다투기도 했지만 아이의 이런 문제가 생기기 전에도 다툼이 잦았다. 자제하려고 노력도 하지만 아이 앞에서 폭력을 쓰며 싸우기도 했다. 아빠는 평소 성격이 말수가 적고 감정 표현을 안하는 편이고 참았다가 한꺼번에 욱하는 편이다. 엄마는 애교도 많고 아이와 놀아주려고 노력도 하지만 감정기복이 심했다. 생리기간 전에는 이런 기복이 심해져 아이를 야단도 더 치게 되고 남편과도 심하게 다퉜다. 친정 어머니도 비슷한 편으로 친정 어머니의 감정기복 때문에 늘 눈치를 보고 불안했었다. 사춘기 이후엔 어머니와 몹시 다투었으며 친정어머니를 피하듯이 결혼했다.
아이를 낳고 친정 어머니처럼 되지는 말아야지 하였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고 정신과에서 우울증 치료를 위해 약물치료를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고백하였다. 자세히 엄마를 관찰하고 검사를 해보니 J의 엄마는 가벼운 조울증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심한 조울증 상태는 없는데, 자주 우울해지면서 짜증과 감정기복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가벼운 조울증이었다. 가족력이 있을 수 있는 질병이라 친정 어머니도 그러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 시절엔 아마도 ‘성격이 나쁘다’는 식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J의 엄마도 친정 어머니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고 자랐으며 딸인 J에게도 마음과 달리 일관된 사랑을 주지 못하고 애착을 안정적으로 형성하지 못했다.
엄마는 치료 받으며 드라마틱하게 감정기복이 줄고 생리기간에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그동안 남편 탓만 했던 게 미안해서 남편에게도 잘해 주고 부부싸움도 줄었다. 당연히 J도 잘 자고 잘 먹는 아이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