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난 첼시 해리스는 붉은 빛이 도는 자신의 긴 머리가 마음에 들었다. 동화 속 공주님이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첼시는 더 이상 머리를 기를 수 없게 됐다. ‘백혈병’이라고 했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는 머리카락이 없는 모습을 보고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도 이제 저렇게 되는 거예요?”
엄마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당장은 그럴 테지만, 머리카락은 또 자랄 거란다, 아가.”
첼시의 길고 붉은 머리카락은 곧 모두 빠졌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당연히 ‘남자 아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첼시는 어른스럽게 웃어 넘겼지만 상처는 마음속에 쌓여갔다. 표정은 어두워졌고 외출을 꺼려했다. 회복도 더뎌지는 것만 같았다. 엄마는 “머리카락이 있든 없든 넌 항상 아름답단다”라고 위로해주었다. 그래도 아이는 평범해 보이고 싶었다.
맷츠 미션 어린이 재단은 첼시에게 ‘머리카락’을 선물했다. 암 투병 중인 아이들의 가발 제작을 위해 써달라며 머리카락을 기부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말이다. 그리고, 재단은 첼시처럼 가발을 선물 받은 아이들을 촬영해 그 화보를 2일 공개했다.
가발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은 자신감을 되찾기도 한다. 영국에서 비영리 단체 맷츠 미션 어린이 재단 측은 매년 약 77m나 되는 머리카락을 기부 받고 어린이 330명을 위한 가발을 만들어 오고 있다.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 역시 머리카락을 기부해 화제가 됐다.
화보에 등장한 조디 데이비스(7)는 지난해 뇌종양 판정을 받고 곧바로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머리카락을 잃었다. 가족과 마주하기도 꺼려했다. 머리카락이 없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고 싫었다. 고작 7살인 아이가 받아들이기엔 힘든 현실이었다.
재단은 데이비스에게 ‘갈색 머리’를 선물했다. 또래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고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데이비스는 평소 입고 싶어 하던 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마치 공주가 된 것처럼 들뜬 마음으로 화보 촬영에 임했다.
이밖에도 원형 탈모증 혹은 전신 탈모증으로 타인을 기피하는 아이들도 재단을 통해 가발을 기부 받는다. 단지 쓰고 벗을 수 있는 머리카락이 생겼을 뿐인데도 아이들은 “난 환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다”고 느끼면서 자신감을 찾아간다. 사람들을 만나 웃고 대화하는 일을 더 이상 꺼려하지 않게 될 뿐 아니라 사고도 긍정적으로 변한다. 이것은 곧 호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재단 관계자는 “머리카락을 잃은 아이들 역시 또래 친구들처럼 왕자나 공주가 되고 싶어한다”면서 “가발을 선물해주면서 꿈을 이뤄주고 자신감까지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