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재판’ 2R, 이재용 내일 항소심… ‘재벌 3·5 법칙’ 또 나올까?

입력 2018-02-04 17:57 수정 2018-02-04 17:58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최순실 뇌물 공여' 항소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이 5일 열린다. 이 부회장과 박영수 특별검사팀 양측 모두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뒤 열리는 ‘세기의 재판’ 2라운드다. 양측이 팽팽한 법리 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재벌 3·5 법칙’(재벌 총수에게 1심에서는 징역 5년을 선고한 뒤 2심에서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면서 풀어주는 것)이 이번에도 나타날지 주목된다.

◇모두가 불복한 1라운드

4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5일 오후 2시 이 부회장 등의 뇌물공여 혐의 2심 선고공판을 연다. 지난해 8월 25일 1심 선고 이후 5개월여 만이다.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수뇌부 5명의 선고공판에서 “사건의 본질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며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뇌물공여, 횡령,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위증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 측과 박영수 특검 양측은 모두 불복하며 항소했다. 이 부회장 측은 항소장에 “1심은 법리 판단과 사실인정에 오인이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 측 법률대리인단 책임 변호사인 송우철 변호사는 1심 선고 직후 취재진을 만나 “1심의 법리 판단과 사실인정, 모든 것을 법률가로서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특검도 이 부회장에 대한 형량 징역 5년이 너무 낮다고 반발하며 1심 때와 같은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직접 구형한 박영수 특검은 이번 사건이 전형적인 정경유착의 사례이며 최씨의 사익을 위한 재단을 지원해놓고 사회적 공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진정한 사회공헌에 대한 모독이라고 질책했다.

◇2라운드 쟁점은 역시 ‘뇌물’ 혐의

항소심의 핵심 쟁점은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다. 즉 삼성이 최씨에게 제공한 승마 지원을 뇌물로 볼 것인지 여부다.

1심 재판부는 이 전 부회장에 대한 뇌물 혐의를 상당 부분 인정하면서도 미르·K스포츠재단출연금 204억원은 ‘제3자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단 출연금이 경영권 승계 특혜를 얻고자 건넨 돈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즉 박 전 대통령이 독대 자리에서 “재단에 출연하라”는 명시적인 요구를 했을 수 있지만, 이 부회장은 ‘대통령이 관심 갖는 대기업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 정도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이 부회장의 선고형량이 특검 구형인 12년보다 현저히 낮은 5년으로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 때문에 특검은 2심에서 공소장을 변경해 재단 출연금에 ‘단순 뇌물공여’와 ‘제3자 뇌물’ 혐의를 모두 적용했다. 뇌물공여는 직무 관련성 및 대가성만 입증하면 되기 때문에 제3자 뇌물공여보다 증명 부담이 덜하다.

아울러 특검은 최씨의 딸 정유라씨 승마지원(약속)에 대해서는 재판부 권고에 따라 제3자 뇌물혐의를 추가했고, 1심 판결에는 없었던 2014년 9월 12일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안가’ 독대 정황을 공소사실에 추가했다.

1심에서 인정된 두 사람의 독대는 2014년 9월 15일, 2015년 7월 25일, 2016년 2월 15일 세 차례다. 이 부회장 측은 특히 2014년 9월 15일 독대는 약 5분간 이뤄져 지원 요구 등의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특검은 안봉근 전 비서관과 안종범 전 수석의 증언 등을 토대로 같은 달 12일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안가’ 독대를 내놨다. 이와 관련해 이 부회장 측은 지난해 12월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2014년 9월 12일 독대 여부를 묻는 특검의 질문에 “없다. 그걸 기억 못하면 내가 치매”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이번에도 ‘재벌 3·5 법칙’ 나올까

이 부회장의 1심 판결 후 일각에선 ‘재벌 3·5 법칙’의 재연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여기서 숫자 3은 ‘징역 3년’ 5는 ‘집행유예 5년’을 뜻한다. 한국 재벌총수들이 법정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으로 실형을 면하는 것이 반복되면서 이런 말이 나왔다. 집행유예는 징역 3년 이하를 선고할 때만 가능한데, 이 부회장에 대해서도 2심에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앞선 재벌총수들의 유사한 사례를 보면 2014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배임)이 파기환송심에서, 2009년 이건희 삼성 회장(탈세)이 1심에서, 2008년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2심 파기환송심에서, 2007년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횡령)이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밖에도 다수 회장들이 비슷한 선고를 받은 바 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