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 비판? 당당해지자”…경찰 고위 간부의 격문

입력 2018-02-04 15:37

현직 경찰 고위 간부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자는 취지의 글을 내부망에 올렸다. 정부가 지난달 14일 권력기관 개혁 기본방침을 발표해 검찰의 수사 총량과 권한을 축소하고 경찰에 힘을 실어주자 냉소적인 반응들이 줄지어 나왔다. 해당 글은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 작성한 글로 보인다.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 소속 이모 경무관은 지난달 22일 경찰 내부망에 글을 게시했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구성과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 방안에 대한 글이었다.

이 경무관은 “검찰 개혁, 다시 말하면 권한분산이 필요한 것은 과도한 집중으로 인한 여러 폐해를 수십 년간 경험해왔기 때문”이라며 “직접수사권으로 인한 표적 수사, 수사지휘권으로 인한 사건 가로채기, 영장청구권으로 인한 전관예우, 이런 비상식을 바로잡는 것은 개인을 위해서도 경찰 조직을 위해서도 아닌 헌법상 규정된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일부 정치권과 검찰, 언론의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 “경찰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며 이에 대한 최종 책임을 지고 있다”며 “그럼에도 기초적인 수사권조차 없는 현실이 참으로 갑갑하고 이런 대접을 받는 게 몹시 견디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또 “우리 조직에서 반성할 점도 있지만 대다수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잃고 있는 우리 경찰이 왜 부당한 대우와 인식을 받아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우리 조직이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찰의 임무와 책임에 상응하는 권한만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요구할 것은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경무관은 “분노할 때는 분노하고 행동할 때는 행동해달라”며 “정치권이나 언론 등에서 이유 없이 우리 조직을 모욕한다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찾아가서든, 전화로든, 댓글로든, 하다못해 ‘화나요’ 이모티콘을 누르든 어떻게든 우리의 불안과 항의의 뜻을 표현해달라”며 “더 이상 참지 마시고 아프면 아프다, 슬프면 슬프다고 표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수사권 조정에 대한 내부의 냉소적인 시각에 대해서는 “그간 우리 고위직들 행태가 현장 여러분께 신뢰를 주지 못하고 많은 실망을 드렸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하지만 한 번 더 믿고 함께 해달라는 염치없는 부탁을 드린다”고 요청했다.

이어 “저부터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고 묵묵히 일만 하는 행태에서 벗어나 책임만큼의 권한을, 하는 만큼의 대우를 요구하는 당당하고 미래지향적인 경찰관이 되도록 하겠다”는 다짐의 말도 남겼다.

이 경무관의 격문에 6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대부분이 ‘공감한다’는 내용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지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