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41명을 포함해 191명의 사상자를 낳은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가 일어난 지 8일 만에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불이 났다. 하지만 세브란스병원 화재에선 일부 환자가 연기를 조금 흡입한 것 외에 인명피해가 없었다. 두 병원 모두 화재 원인으로 전기 합선으로 추정되지만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①초기 진화에서 스프링클러의 중요성
소방당국과 병원 측에 따르면 세브란스병원 화재는 3일 오전 7시57분쯤 본관 3층 푸드코트 천장에서 시작돼 오른쪽 5번 게이트 천장으로 번진 것으로 추정된다. 다행히 환자 등 300여명이 긴급대피 했고 인명피해는 없이 약 2시간 뒤인 오전 9시59분쯤 불은 완진됐다.
스프링클러(화재 시 자동으로 물을 뿌리는 장치)가 화재 초기진화에 큰 역할을 했다. 밀양 참사 당시,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스프링클러의 부재가 지적됐다. 하지만 세브란스병원에선 화재 직후 화재경보시스템이 작동해 스프링클러에서 나온 물이 자동으로 화재 진화에 나섰다.
소방법은 1개 층 바닥 면적이 1000㎡ 이상이면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했다. 세브란스병원 본관 3층의 바닥 면적은 8600㎡다. 반면 밀양 세종병원은 층별로 바닥면적이 213~355㎡였다. 의무 설치 대상에 빠져있었고 병원에는 스프링클러가 1기도 없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스프링클러 의무적용 대상면적의 축소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②연기 차단한 방화벽
스프링클러만으로 화재를 막기는 어렵다. 스프링클러가 미처 막지 못한 화염과 연기를 차단하기 위해 방화벽이 작동한다. 밀양 참사 당시엔 방화벽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1층에는 도면과 달리 방화벽이 없었고, 2층 이상으로는 방화벽과 비상발전기 모두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병원에는 연기가 급속도로 퍼졌다. 밀양소방서장은 “현장에 도착해 보니 불길은 1층에만 치솟고 있었지만 검은 연기가 건물 전체에 가득했다”고 말했다. 대다수가 중환자·고령 환자이던 사망자들은 대부분 연기로 인한 질식으로 숨졌다.
이와 대조적으로 세브란스병원에선 방화벽이 곧바로 작동하면서 불과 연기를 차단했다. 덕분에 통로를 타고 연결되는 별관 어린이병원까지 화염과 연기가 넘어가지 않았다.
③풍부한 인력과 정기적인 화재 대응 훈련
세브란스병원 화재는 스프링클러나 방화벽 등 안전 설비 외에도 정기적인 훈련 등 화재대응 매뉴얼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해마다 서울 서대문구청 지휘 하에 화재 대응 정기훈련을 해왔다”며 “화재 직후 소방당국에 신속히 신고했고 화재관리 매뉴얼에 따라 행동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간호사들이 환자 대피를 유도한 것도 매뉴얼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현장에 있던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간호사, 병원 직원과 출동한 소방관의 안내로 21층 옥상에 질서 있게 피신했다가 1시간 10분 만에 병실로 무사히 돌아왔다”며 “소방관과 병원 의사, 간호사 직원들이 100% 완전하게 대처했다”며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밀양 세종병원은 사고 당일 의료진이 12명밖에 근무하지 않았다. 당직 의사인 민모(59)씨는 환자들을 대피시키다 숨진 채 발견했지만 의료진의 수가 부족해 사고에 신속히 대처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밀양 참사 당시 화재 신고가 늦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경남지방경찰청에 따르면 밀양 세종병원 응급실로 연기가 들어온 시각은 오전 7시25분이었지만 최초 신고 시각은 오전 7시32분으로 7분이 시간이 비어있는 상태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