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전문가이자 한국 현대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시카고대 석좌교수 특강이 2일 동아대 부민캠퍼스에서 열렸다.
이날 특강에는 동아대 교직원과 학생은 물론 부산 시민 등 모두 300여명이 몰려 브루스 커밍스 교수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시카고대학교 유학 시절 사제지간이었던 인연으로 브루스 커밍스 교수를 직접 초청한 한석정 동아대 총장은 “미국 저명한 학자인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강연을 동아대에서 주최하게 돼 큰 영광”이라며 “교수님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은 냉전 시각에 함몰됐던 기존 이론을 뛰어넘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오랫동안 행동하는 지성으로 살아오셨다”고 말했다.
또 한 총장은 “지식인들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전제해야 한다”며 “한반도에 많은 이목이 집중된 시점에서 이번 강연은 남북한 문제 해결에 적절한 강연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동아대 인문역량강화사업단(CORE)이 주최하고 석당학술원, 동아시아연구원, 부산통일교육센터 등이 함께 주관한 이날 행사에서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제국의 기억상실증 : 1945년 이후 한국에서의 미국인들의 역사는 왜 미국에서 무시되고, 망각되고, 결코 알려지지 않았으며, 감춰져 있는가’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이날 강의에서 “전쟁을 시작하기는 쉽지만, 빠져나오기는 끔찍할 만큼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가 바로 ‘한국전쟁’이다. 하지만 많은 미국인이 한국전쟁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며 한국전쟁을 “미국의 엄청난 전략적 실패”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매카시 활동,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의 논쟁 등으로 당시 한국전쟁에 대한 미국의 판단은 ‘당파적 정쟁’으로 바뀌어 버렸고, 한국전쟁은 베트남전 같은 ‘TV전쟁’이 아니어서 미국인에게는 보이지도 않았다”며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역사라고 해서 우리가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그는 “지난 역사를 망각하고 결코 알려고 하지 않는 미국은 북한이 핵폭탄을 터트리거나 로켓을 하늘로 쏘아 올리는 등 어쩔 수 없을 때에만 한반도와 북한에 대해 가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서로에 대해서 무지한 미국 등 군대들은 또다시 충돌할 수도 있지만 한반도에서 군사적으로 해결되는 대책은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브루스 커밍스 교수 특강에 이어 펼쳐진 대담에는 김성국 부산대 교수 사회로 박형준 동아대 교수와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참여해 분위기를 달궜다.
박 교수는 “묻힌 것을 드러내고 북한을 내재적으로 이해하는 논점을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커밍스 교수의 시각을 높이 산다”면서도 “미국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 미국인들이 북한에 대체로 무관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이어 박 교수는 “미국의 오판이나 전략 실패를 지적하는 것과 동시에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의 오판을 저지할 수 있겠나”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김동춘 교수는 “오늘날 북한에 대한 미국의 시각은 ‘망각’이라기보다는 의도된 무관심이나 방치, 무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며 “이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도덕성 문제라기보다는 제국이 식민지에 가지는 일반적 속성이라는 생각이 크다”고 평가했다. 또 김 교수는 “그런 측면에서 ‘제국의 기억상실’보다 피해자인 한국의 기억상실이 더 심각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한편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지난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 2권에 걸쳐 저술한 ‘한국전쟁의 기원’은 한국전쟁의 역사적·사회적 기원을 파고든 역작으로 한국전쟁을 이해하는 중요한 지침서가 됐다.
국내에 번역된 주요 저서로는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2001년), ‘미국패권의 역사’(2011년), ‘김정일 코드’(2005년) 등이 있으며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제1회 김대중 학술상’(2007년)과 ‘제2회 제주 4.3 평화상’(2017년) 등을 수상했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