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최악 스캔들 정부 자료 공개
한반도 등 서태평양 총괄하는
해군 간부들, 거물 군수업자에게
고급 양주·시계 등 뇌물 받고
군 기밀 넘겨… 장교 등 16명 기소
작년 충돌·좌초 사고 냈던 함대
세계 바다를 지배하는 미국 해군도 뇌물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한반도를 포함한 서태평양 해역을 총괄하는 미 해군 제7함대가 역대 최악의 뇌물 스캔들로 시끌벅적하다. 한 거물 군수업자가 상습적으로 온갖 뇌물과 성 향응을 군 간부들에게 제공하고 군사기밀을 빼낸 사건이다.
2일 워싱턴포스트(WP) 홈페이지에 따르면 미 법무부와 해군이 7함대 스캔들을 조사 중인 가운데 현재까지 7함대 소속 장교 15명과 병사 1명이 기소됐다. 이른바 ‘팻(fat·뚱보) 레너드’로 불린 싱가포르 방위업체 소유주 레너드 글렌 프랜시스(53)에게 상습적으로 거액의 뇌물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이를 부인하며 재판에서 거짓증언한 혐의다.
WP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보도한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7함대 기함인 ‘블루리지’ 소속 장교들은 2006년부터 2013년 사이 각종 뇌물뿐 아니라 최소 45회에 걸쳐 성매매 여성을 제공받으며 난잡한 파티를 벌였다. 레너드는 성매매 여성들을 ‘엘리트 실(SEAL·특수부대)팀’이라고 부르며 블루리지가 취항하는 항구마다 접대를 위해 들여보냈다.
고급 호텔과 식당에서 열린 파티마다 이들은 수천 달러(수백만원)짜리 양주를 마시고 쿠바산 시가를 피워댔다. 레너드가 찔러준 뇌물은 드러난 것만 100만 달러(10억8000만원)어치로 현금, 항공권, 맞춤정장, 명품시계와 핸드백 등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규정상 미군은 한 번에 20달러(약 2만1600원) 이상의 선물을 받을 수 없고 연간 제한도 50달러(약 5만4000원)다. WP에 따르면 이번 스캔들로 조사받은 군 간부는 60명이 넘는다.
레너드는 7함대의 군사기밀을 넘겨받고 사적이익을 챙기는 데 써먹었다. 항공모함과 잠수함 등의 이동경로를 알아내 자신의 회사 ‘글렌디펜스마린아시아(GDMA)’가 이들의 식량이나 하수처리, 예인선 등 계약을 따내도록 하는가 하면 아예 뇌물을 먹인 인맥을 활용해 항로를 바꾸기까지 했다. 레너드는 2013년 체포된 뒤 총 3500만 달러(약 378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기고 뇌물공여를 한 혐의로 기소돼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WP는 정황상 7함대 사령관 등 최고위 장성들도 레너드와 연관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 기간 7함대 사령관을 지낸 인물은 6명이다. 이 중 유일하게 WP 인터뷰에 응한 퇴역군인 W 더글러스 크로더 중장은 자신은 레너드를 멀리했다면서 “그렇게나 많은 부하들이 뇌물을 받았다는 데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7함대는 연달아 사고를 내며 구설에 올랐다. 1월에 순양함 ‘앤티텀’이 도쿄만에서 좌초한 데 이어 5월에는 순양함 ‘레이크 채플레인’이 한반도 작전 중 어선과 충돌했다. 6월에는 이지스 구축함 ‘피츠제럴드’가 필리핀 컨테이너선과 충돌해 7명이 목숨을 잃었고, 8월에는 이지스 구축함 ‘존 S 매케인’이 유조선과 충돌해 승조원 10명이 사망했다. 11월에는 일본 해상자위대와 공동훈련 중 함재기가 추락, 탑승자 11명 중 3명이 실종됐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