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알 글씨’로 쓴 수첩만 ‘23권’… 임명 262일 만에 청와대 떠난 박수현

입력 2018-02-02 17:50
6.13 지방선거 충남지사 출마를 위해 사표를 제출한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이 2일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에게 고별사사를 하고 있다. 2018.02.02. 뉴시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임명된 지 262일 만인 2일 청와대를 떠날 때까지 모두 합쳐 23권의 수첩을 사용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과 행동, 하나 하나를 검은색, 빨간색 펜으로 직접 빼곡하게 적었다. 글자를 크게 쓰는 것은 비효율적이라 최대한 작게 썼다. 박 전 대변인은 지난해 5월 16일 임명된 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처음으로 안경을 쓰게 됐다.

글씨를 하도 많이 써 손가락에 물집도 잡히고 뼈도 아팠다. 다한증에 걸려 보약을 지어 먹기도 했다. 하루에만 수백 통의 전화가 걸려와 고장 난 휴대 전화기를, 수차례 교체했다.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5시간이 채 안되지만 기자들과의 밥자리,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박 대변인은 대통령의 일정에 동석하느라 정신이 없어 청와대를 구경시켜드리기로 한 어머니와의 약속도 깜빡 잊었다. 그는 청와대로 이동하는 관용차량 안에서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다가 참관인 출입구 앞에서 서성이는 어머니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제 서야 그 약속을 기억했다. 그는 지금도 그 일을 후회한다. 박 대변인은 이날 고별 브리핑에서 “국민 여러분, 기자 여러분, 그동안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고 말했다.

6.13 지방선거 충남지사 출마를 위해 사표를 제출한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이 2일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에게 고별사를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2018.02.02. 뉴시스.


박 대변인이 6월 지방선거에서 충남 지사직에 도전하기 위해 사의를 표명하기 전부터 문 대통령은 후임 대변인 인선을 고민했다. 박 대변인만큼 대통령의 의중을 잘 파악하며, 겸손하면서도 언변이 뛰어난 인사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누가 와도 비교될 수밖에 없다”며 “박 대변인보다 잘할 사람은 없고, 최대한 근접한 인사라도 찾아야 한다”는 말이 돌았다. 박 대변인은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항상 “대통령의 진심을 이해해달라”는 말을 했다. ‘진심 수현’이 그의 별명이었다.

박 대변인은 이날 출입기자들에게 돌린 문자 메시지를 통해 “이제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를 바탕으로 여러분과 함께 걷겠습니다. 더 살기 좋은 충남의 여정에 여러분과 힘찬 동행을 하겠습니다”고 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