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대생이 결혼도 하지 않고 엄마가 됐다. 엄마는 엄마가 된 딸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10개월 동안 한 생명을 품은 채 말할 곳 없이 혼자 앓았던 것을 생각하면 목이 메었다. 엄마는 다 용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딸은 말할 수 없었다. 엄마는 딸을 받아줄 수 있을지언정 사회는 그렇지 않을 게 분명했다.
아이를 버릴 수 없었던 딸은 “버려진 아이를 데리고 왔다”는 거짓말을 했다.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20대 여대생이 출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신생아 유기 자작극’을 벌인 일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거짓말을 했다”라는 사실보다는 “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었나”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 미혼모 출산을 숨겨야 하는 사회
지난 31일 20대 여대생이 자신이 아이를 낳고도 ‘버려진 신생아를 구조’한 것처럼 거짓말 하는 일이 일어났다.
아이 아빠와는 연락이 안 된지 오래였다. 언니 부부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털어놓을 수 없었다. 혼날 것이 무서웠고 들통날까 당황했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결혼 하지 않은 20대 여성이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주변 시선은 싸늘할 것이 뻔했다. 때문에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길 참이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엄마는 “진작 엄마한테 말하지. 그럼 우리가 키워줬을 텐데….”라며 한탄했다. 미혼모가 된 여대생은 “당황해서 그랬다”며 “딸을 데려와 키우겠다”고 말했다.
◇ ‘입양 특례법’이 유기 불러와…비밀출산 특별법 추진
경찰에 따르면 낙태금지가 이뤄진 2010년 이후 꾸준히 유기사건이 증가했고 2012년 8월 입양 특례법 개정 영향으로 2013년부터 영아유기 사건이 또 다시 급증했다고 보고 있다.
입양 특례법은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는 법안으로 가족관계증명서에 혼외자녀 출생기록을 남기는 법이다. 때문에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은 보육시설이나 입양을 보낼 수 없어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때문에 법 제정의 필요성을 느끼고 2014년 비밀출산제도를 도입한 독일 사례를 참고해 오신환 바른정당 의원이 특별 법안을 마련 중이다. 프랑스·독일·미국 등에서는 이미 시행 중이다.
독일의 경우 산모가 상담기관에 상담을 신청하면 이 과정에서는 실명이 드러나지만 다음 단계부터는 신원이 전부 봉인된다. 출산 역시 익명으로 진행하고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
한국에서도 ‘임산부 지원 및 비밀출산에 관한 특별법’이라는 이름으로 최종조율을 거쳐 2월 국회에 발의할 예정이다.
◇ 비밀출산 도입에 따른 도덕적 해이 우려
제도를 악용해 오히려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 역시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출산 사실을 숨기려는 자체가 문제라는 뜻이다.
현재로는 ‘원치 않는 임신’이라는 범위가 자체가 불분명해 임신을 의도하고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비밀 출산’을 선택할 수도 있고 출산했다는 사실을 결혼상대에게 숨길 여지도 있다. 이 경우 혼인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
법의 테두리에서 여성과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오히려 무책임한 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