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56. 배우 김소희의 모노드라마 ‘내게 기적이 일어났다’

입력 2018-02-01 09:33

배우 김소희와 연출 이채경 ‘모노드라마’로 만나다


한국연극의 대표적인 여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 김소희가 데뷔 25년 만에 ‘내게 기적이 일어났다’ (연출·작 이채경) 모노드라마에 나섰다. <느낌극락 같은>, <혜경궁홍씨>, <원전유서>, <맥베스>, <고곤의 선물> 등 수 십여 편의 연극을 통해 무대에서 발화되는 소리와 연기의 무게감은 정확한 발음으로 인물의 말을 구현해 내는 여배우라는 찬사와 평가를 받고 있다.

극중 인물 대사를 배우의 말로 발화시켜 숙성시켜내는 화술이 정확한 배우다. 때로는 날카롭게 관객의 마음을 도려내고, 내면의 감성과 극중 인물의 정서를 내면의 진실성으로 담아낸다. 연기표현의 기술은 극중 인물로 완전 무장해 무대를 걷고 뛰면서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내·외면의 파장은 신뢰를 준다. 현대극, 대중극, 실험극 등 다양한 연극 장르를 섭취하며 배우 김소희만 표현시킬 수 있는 연기색감으로 극중 인물을 다양하게 요리하고 있는 그녀는 지난해 <갈매기>, <두 개의 달>을 통해 연출력도 인정받았다.

영화 <파스카>와 지난해 화제가 된 <나의 연기워크숍>을 통해서도 스크린 연기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배우의 노련함은 오히려 TV일일드라마에서 현대적인 맏며느리나 회사를 경영하며 다양한 갈등을 연결하는 커리어우먼으로 등장하면 제격이다. 내면의 광기를 때로는 폭발시키고, 철저하게 두 얼굴로 살아가는 역할도 시청자들에게 시선을 잡아끌 것 같다. 그 만큼 TV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숨겨진 배우다.

이번 작품은 헨리크 입센의 대표작품 ‘인형의 집’ 극중 인물 노라의 억압된 내면과 손상된 욕망의 변화를 현재로 소환해 관찰한다. 150년 전 인형의 집에서 살아간 인형 같은 존재 ‘노라’. 그 집을 나선 현재 ‘노라’는 어떨까. 연출은 맡은 이채경은 이 지점에서 모티브를 연결해 인형의 집” 이후 노라의 삶을 바라본다. 희곡에서 살아가는 극중 인물의 삶이 텍스트로 박재되지 않고 이후에 “어떠한 변화가 있을까”라는 재미있는 관찰의 출발점, 그것을 이번 극의 모티브로 반응을 일으켜 동시대로 연결시키려 하는 작가적 아이디어가 좋다.

이채경 연출은 그동안 다양한 실험극과 작품들을 선보이면서 <샘>, <산채로 말린 채로>,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장면을 연습하다>, <동주, 점점 더 투명해지는 사나이> 등 다양한 작품을 직접 쓰고 연출해 오면서 독자적인 연극세계로 확장시키고 있다. 특히 <동주, 점점 더 투명해 지는 사나이>는 2014년 대학로 게릴라 소극장에서 ‘서시’ 라는 제목으로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삶과 죽음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이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연극 페스티벌에 공식 초청되어 2일까지 세 차례 후쿠오카 나미키스퀘어 대연회실(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입센의 ‘인형의 집’ 이채경의 ‘노라

헨리크 입센(1828~1906)의 대표작 ‘인형의 집’(1879)은 15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무대에서 상연되고 있는 작품으로 사실주의 연극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무대의 삶은 일상생활의 재현과 극적 환영으로 감정을 몰입 시킨다. TV가 발명되기도 전 19세기 시대적 상황에서 인간의 삶을 실제적으로 투영시키고 사실화된 재현으로 용해시킬 수 있는 것은 연극이 유일했다. 에디슨이 키네토스코프를 1889년에 발명했으니 당시 삶을 실제적으로 투영할 수 있는 것은 사진, 연극, 회화 정도였다.

사진기술도 실제 생활에 적용된 시기가 아니었다. 연극과 회화는 당대 사회문제와 현상을 투영 할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이었다. 입센 작품 이후 150년이 흐른 지금은 기술의 발달로 영화와 드라마는 실제 삶보다 더 섬세하게 표현된다. 연극학도들에게는 고전, 근대, 현대, 실험극 등 장르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연극예술이 특정한 장르만으로는 관객의 공감을 얻어내고 승부수를 걸기에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쉽지 않은 일이다.

미래에는 로봇배우가 등장해 실제 배우와 2인극을 할 수 도 있다. 이 시대 연극 구조는 복합적이거나 본질적으로 단순화 된다. 영화 못지않게 첨단기술이 연극으로 도입되고, 때로는 배우의 살아있는 숨결로만 압축되어 연극을 진행한다. 연극은 배우의 내면으로 관객 마음에 다가서기 때문에 표현의 기술로만 공감을 받을 수 없다. 연극 형식의 해체는 그 틈으로 다양한 연극 재료를 심어 독특한 연출의 방식으로 배우들 숨결이 무대로 살아났을 때 관객은 공감한다. <임영웅>, <오태석>, <이윤택>, <손진책>, < 윤광진>, <이병훈>, <김광보>, <이성열>,<최용훈>,< 박근형>, <양정웅> 을 비롯한 수많은 연출가들이 독자적인 연출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입센의 ‘인형의 집’도 150년 된 고전작품의 먼지를 무대 공기로 흡수해 재연하는 것 보다는 동시대에서 그 의미를 해석하고 창의적인 연출 방식으로 연극이 설계되었을 때 의미성은 확장되고 공감은 좁혀진다. 이채경 연출은 인형의 집 구조에서 결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채 살아가는 극중 인물 노라의 억압 된 내면에 새 삶을 덧칠하고 그려내려는 실험을 한다. 김소희는 주어진 새로운 길을 밟으며 쫒아간다. 작품은 전작에서 노라가 문을 닫고 집을 떠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번 작품은 집을 떠난 그 이후의 노라의 삶을 투영한다.



세상 밖으로 연결된 인형의 집 ‘노라’로 분한 김소희 “내게 기적이 일어났다”


입센의 원작 ‘인형의 집’에서 살아가는 노라는 아버지와 남편에게 인형 같은 존재로 취급을 받았다. 여성으로 삶과 존재의 박탈성은 내면의 타살이다. 타살의 흔적들은 정체성의 혼돈과 자아의 결핍으로 확대되고 여성으로 이탈된 해방과 자유를 흡수하며 살아갈 수 없는 불안전한 인간이다. 그 내면은 불안감으로 들어나고 타자를 통한 억압된 욕망과 분노는 사회의 외벽으로 분사되지 못한 채 선택권은 박탈당한다. 삶의 해방, 여성과 존재, 자유가 억압된 불평등의 사회적 문제를 입센은 중산층 계급인 노라 남편을 통해 여성의 독립성이 보장 되지 못하는 당시 사회적 구조를 들추어냈다면 이채경과 김소희 배우가 그려내는 모노드라마 “내게 기적이 일어났다”는 현실사회로 뛰쳐나온 노라가 결혼한 한 아이의 엄마, 남편의 여자가 아니라 여성으로 ‘노라’의 내면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1인극이지만 인형의집에 등장하는 중요인물들은 소리로 처리되고 극중 노라(김소희 분)는 그 이전의 입센의 삶에서는 말 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꺼낸다. 손상된 내면과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여성으로 변화된다. 무대는 세상의 밖과 안을 연결하기 위해 열린 구조다. 집을 떠난 노라에게 집은 마치 사회구조의 안과 밖으로 연결된다.

무대 한 켠으로 어항에 담긴 열대어들이 보인다. 자유로운 내면이 부재되고 거세되지 못한 억압된 욕망의 노라 내면성을 흡수한다. 무대 천장에는 노라의 옷들이 걸려있다. 마치, 자유롭게 옷을 입고 벗어 낼 수 없는 선택권을 박탈당한 노라의 삶이다. 무대는 몇 개 의자와 간단한 소품들이 전부다. 마치 불안전하고 불안한 노라의 내면처럼 말이다.

이 모노드라마는 집을 나선 노라의 현재의 삶과 그 길을 떠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자신의 내면을 쏟아내는 넋두리에서 출발된다. 변호사 남편, 아이를 둔 노라는 결혼 8년 만에 이혼을 하고 집을 나선다. 프롤로그에서는 남편과 노라의 대화로 시작된다. 8년을 함께 산 이유, 인형처럼 다루어졌던 그의 내면은 “당신과 아빠는 내게 큰 죄를 지은 거에요”하며 남편 곁을 떠난다.

집을 떠난 노라는 “단지, 자신의 말을 하고 싶어” 세상 밖으로 나와 걷는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변호사 부인으로 살아온 노라. 여전히 내면의 자유로움은 부재되어 있고, ‘여성’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여행은 150년 전이나 달라질게 없어 보인다. 누구에게나 엄마, 아내, 아빠의 딸로만 존재한 노라는 여전히 열대어가 갇힌 어항속의 여자다. 노라에게 남편은 여전히 낮선 존재이고 두 사람이 가까워 질 수 있는 것은 극중 노라 대사처럼 “기적이 일어났을 때” 가능한 일이다.

기적은 노라에게 더 이상 믿음으로 존재되지 않는다. 현재를 살아가는 노라의 내면과 여전히 여성으로 부딪치는 내면의 욕망들 틈에 연출은 뮤지컬 넘버를 간결하게 끼워 넣고 배우 김소희는 노래와 연기로 다양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인형의 집 노라의 이후의 삶을 자유롭게 걷는다. 이채경은 여전히 다양한 시도를 하며 이번 작품으로 새로운 연극의 변화를 모색하고, 김소희는 어떤 삶이든 주어진 무대를 지켜내려는 신뢰가 돋보인다.

3월22일부터 4월8일까지 30(삼공)스튜디오에서 공연되는 이 작품은 가마골소극장 전작 공연과는 변화된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다. 이채경은 연출은 “30스튜디오 공연에서는 배우인생 김소희의 삶으로 확장해 작품을 공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말에 공감한다. 이 작품을 보면서 무대는 분장실로 변화되고 이 공간에서 25년 배우 생활 동안 그녀를 거쳐 간 무수한 극중 인물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며 관객들에게 친숙한 인물을 들추어내는 모노드라마도 노라의 삶과 중첩된다. 이 작품은 2018년 가마골극장 배우 전(展) 1탄이다. 그 뒤를 잇는 연희단거리패의 대표적인 남자배우 이승헌의 <수업>은 4일까지 공연된다.

▶배우 김소희는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연희단거리패 대표를 맡고 있다. 올해 배우로 활동한지 25주년이 됐다. 수십여 편의 연극에 참여하면서 한국연극의 대표적인 여배우로 평가받고 있다. 2014년 <50회 동아연극상 연기상>,2013년 <제14회 김동훈 연극상>, 2009년 <제45회 동아연극상 연기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이채경 연출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으며 뉴욕대학교에서 뮤지컬극작예술 석사를 받았다. 현재 극단 가마골 상임작가이자 연출가로 대중극과 실험적인 작품을 모색하며 다양한 글쓰기와 연출을 해오고 있다. <샘>으로 제6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창작뮤지컬 대상>과 제1회 <세익스피어어워즈 각색상>과 젊은 연출가상을 수상했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