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부지법의 문유석 부장판사가 8년간 감춰져있던 검찰 내 성추행 사건에 분노하며 ‘미 퍼스트(Me First)’ 운동을 제안했다. ‘미투(Me Too)’ 운동을 지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변에서 성범죄를 목격했을 때 나부터 방관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선언이다.
문 판사는 30일 페이스북에 “딸들을 키우는 아빠로서 서지현 검사님이 겪은 일들을 읽으며 분노와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이 따위 세상에 나아가야 할 딸들을 보며 가슴이 무너진다”고 썼다. 그러면서 “하지만 명심할 것이 있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당연히 공감해야 하지만, 거기 그쳐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 판사는 “이런 짓을 저지르는 가해자들은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다. 그들은 아무리 만취해도 자기 상급자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며 “이들은 절대 반성하지 않는다. 이들보다 강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성범죄에 가혹할 만큼 불이익을 주고, 무관용의 원칙으로 대해야 가해자들이 “바뀔까 말까”라고 주장했다.
“서 검사님이 당한 일이 충격적인 것은 일국의 법무부 장관 옆에서, 다수의 검사가 뻔히 두 눈 뜨고 지켜보는 장례식장에서 버젓이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다. 눈앞에서 범죄가 벌어지는데 그깟 출세가 뭐라고 그걸 보고도 애써 모른체한 자들도 공범이다. 한 명, 단 한 명이라도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하며 제지한다면 이런 일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단 한 마디다.”
문 판사는 “내 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절대로 방관하지 않고 나부터 먼저 나서서 막겠다는 ‘미 퍼스트’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나부터 그 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앞으로는 더 노골적으로, 가혹하게, 선동적으로 가해자들을 제지하고, 비난하고, 왕따시키겠다. 그래서 21세기 대한민국이 침팬지 무리보다 조금은 낫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겠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문 판사는 에세이 ‘판사 유감’ ‘개인주의자 선언’, 소설 ‘미스 함무라비’ 등을 출간한 ‘글쓰는 판사’다. 문 판사는 31일 ‘미 퍼스트’ 운동에 대해 “거대한 흐름인 ‘미투’에 함께하는 작은 가지에 불과하다”고 부연했다. 그는 “감히 여성들의,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체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자 함이 아니다. 가해자 내지 방관자 쪽이기 쉬운 중년 기득권 남성으로서 반성하고, 가해를 방관하지 않고 나서서 제지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 그리고 주로 저와 같은 입장에 있는 분들에게 권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