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TOEIC)은 한 해 응시자 수 200만명, 연 24회 시행되는 국내 최대 영어시험이다. 미국교육평가원(ETS)이 출제하고 국내 민간기업 YBM이 대행 운영한다. 28일 토익 대행사 YTM의 ‘갑질 규정’을 조사해달라는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청원인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나서 YBM의 토익 시험규정이 과연 공정한 것인지 철저히 조사해주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썼다. YBM의 토익 운영이 불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시험 한 달 전, 성적도 못 보고 접수부터?
현재 국내 토익응시료는 정기접수 기준 4만4500원이다. 정기접수 기간은 시험일 기준 두 달 전부터 한 달 전까지. 이후에는 특별 추가접수기간으로 분류돼 10% 인상된 4만8900원을 지불해야 한다. 31일 현재 정기접수로 응시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험 날짜는 3월 11일이다.
문제는 토익 성적이 나오기 전 다음 회차 시험이 마감된다는 점이다. 응시생이 자신의 성적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음 차례 시험을 신청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회차를 건너 다음 회차 시험에 응시하려 해도 정기접수가 끝나 특별추가접수를 해야 한다. 응시생들은 이 문제를 대표적인 ‘YBM의 갑질’로 꼽는다. 국민청원을 올린 A씨는 “OMR 기계에 의한 채점이 15일 이상 소요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며 “만약 불가피하게 15일 이상이 소요되어야만 한다면 다음 회차 시험의 접수 기간을 채점 발표일 이후로 연장하는 것이 공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별접수자가 유리하다? 미묘한 환불규정
성적 발표 시점은 환불 규정과도 연관 돼 있다. YBM에 따르면 정기접수자는 정기접수기간 내 취소시, 특별 추가접수자는 특별 추가접수기간 내 취소시 전액 환불이 가능하다. 다만 정기접수자가 정기접수기간이 끝난 후 환불 받으려면 다음과 같이 취소 수수료가 달라진다.
- 1차 취소 신청 기간(정기 접수 마감 이후부터 1주간): 응시료의 60% 환불
- 2차 취소 신청 기간(1차 신청 기간 이후부터 1주간): 응시료의 50% 환불
- 3차 취소 신청 기간(2차 신청 기간 이후부터 시험 전일까지): 응시료의 40% 환불
4만4500원을 내고 정기접수를 한 응시자가 정기접수기간이 끝난 후 취소할 경우 2만6700~1만7800원을 돌려받는다. 반면 특별 추가접수자는 추가접수 마감일인 시험 3일 전까지 4만8900원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미리 시험을 접수한 응시자가 늦게 접수한 응시자보다 적게 환불받는 셈이다. 시험 결과 등 상황에 따라 취소를 고려하고 있는 학생이라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계속 오르는 토익 응시료, 기준은 ‘YBM 마음’
토익응시료는 2006년부터 2016년까지 10년 새 30.8% 가까이 올랐다. 2006년 3만4000원이었던 응시료가 이듬해 3만7000원이 됐고 2009년 3만9000원, 2012년 4만2000원, 2016년 4만4500원으로 추가 상승했다.
2016년 당시 YBM은 ‘신토익’ 원서접수 개시일을 일주일 잎두고 홈페이지를 통해 응시료 인상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YBM 측은 “그동안의 물가 상승 및 시험 시행 관련 제반 비용 증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응시생들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YBM은 2012년 토익스피킹과 토익라이팅 응시료 역시 7만2600원에서 7만7000원으로 일제히 올린 바 있다. 토익과 토익스피킹 시험을 한 번씩만 보더라도 응시료는 13만원에 육박한다. ‘YBM 갑질 조사’ 청원에 서명한 B씨는 “시험보는 비용만으로도 등골이 휜다”며 “터무니 없는 응시료를 제대로 조사해달라”고 강조했다.
◇YBM ‘갑질 규정’ 비판 처음 아닌데…
2013년 청년유니온, 참여연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단체는 토익 시험 관련 불공정행위와 횡포에 대해 YBM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당시에도 응시료 인상, 접수기간 꼼수 등 YBM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나 ‘접수일 7일 내에 환불 가능’ 시정명령 외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YBM이 2017년 상반기 주요 기업의 채용공고 553건을 바탕으로 토익 활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 71%가 토익 성적을 ‘참고’했다. ‘참고’는 해당자에 한해 성적을 제출하도록 하거나 성적 제출시 우대 또는 가점을 주는 경우, 입사지원서에 토익성적 기재란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일정 점수 이상의 토익 성적을 요구하는 기업은 23%, 기준 점수는 없지만 토익 성적을 제출하도록 한 기업은 7%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부터 국가직 7급 공무원 영어 필기시험이 영어능력검정시험 점수 제출로 바뀌면서 응시자 90% 이상이 토익 성적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대학에선 졸업요건으로 일정 수준의 토익 점수를 요구한다. 취준생에게 토익은 여전히 선택 아닌 필수다.
31일 낮 12시 현재 ‘YBM 갑질 조사’ 청원은 1만7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특히 20~30대 젊은층이 적극적으로 공감을 보내고 있다. 청원인 A씨는 “YBM의 독점적 시장 지위는 제재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며 부족한 일자리와 채용비리로 좌절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취준생들이 취업을 위한 준비 과정에서마저 또다른 ‘갑질’을 당하지 않도록 힘써달라”고 호소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