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생한 대형 화재 참사 영향으로 소방기본법 개정안 등 소방안전 관련 법안 3건이 2월 임시국회 첫날인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지난달 충북 제천에 이어 지난 26일 경남 밀양에서도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자 국회가 법안 처리에 부랴부랴 나선 것이다. 평소 재난 예방을 위한 보완입법에는 무관심하다가 문제가 터진 후에야 뒤늦게 제도 정비를 해온 국회의 입법 행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소방기본법 개정안은 공동주택에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를 의무화하고 이곳에 주차하거나 진입을 가로막은 경우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도록 했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주차금지 구역인 소방 관련 시설을 ‘주정차 금지구역’으로 변경하고 그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은 소방시설업자의 재무 안전성, 소방기술자 관리·배치 등의 정보를 담은 소방시설업 종합정보 시스템을 구축, 운영토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하지만 국회가 소방안전 관련 법안을 뒤늦게 처리해 화재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는 비판이 여전하다. 이날 통과된 소방기본법 개정안은 2016년 11월 발의돼 1년 넘게 상임위에 계류돼 있었다. 제천 화재 이후 지난 10일에야 소관 상임위를 통과했는데, 법안 발의 후 상임위 상정까지 14개월이 걸렸다. 반면 상임위 통과→법사위 상정은 20일, 법사위 통과→본회의 통과에는 단 하루가 소요됐다. 법사위에서 해당 법안들이 논의된 시간은 15분에 불과했다.
대형 사고가 터진 뒤 여론의 따가운 질책과 비판을 들은 뒤에야 수습에 나서는 국회의 뒷북 행태는 예전부터 반복돼 왔다. 해양 안전을 강화하는 해사안전법 개정안은 발의 후 적극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다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3일 만에 급하게 처리됐다. 성폭력 범죄자의 전자발찌 착용 기한을 늘리는 이른바 전자발찌법도 2009년 발의됐지만 2010년 3월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 사건이 발생한 그달에야 국회 문턱을 넘었다.
국회에는 법안 처리가 지연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과 의견들이 적지 않다. 우선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폐지해 법안 처리 속도를 높이자는 국회법 개정안도 발의된 상태다. 또 상시 국회를 도입, 본회의를 수시로 열어 필수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과 국회의원 스스로 평소 법안 심사에 충실히 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소방안전 등 국민 안전과 밀접하게 관련해 발의된 법안은 해당 상임위 의원들이 미리미리 법안을 검토해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하루빨리 시행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임시국회 개회사에서 “공식 회기 전부터 상임위를 가동해 법안 처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지만 아직도 8000여건의 법안이 미처리 상태”라며 “임시국회 기간 중 시급한 민생법안, 논의가 지연됐던 중요 법안들을 신속히 처리해 달라”고 당부했다.
글=노용택 신재희 기자 nyt@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