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증·개축, 과태료 물고 버티는 게 이익… 안전불감증 만연

입력 2018-01-30 09:45
밀양 세종병원과 세종요양병원을 다리처럼 연결한 통로(세종병원 간판이 있는 부분) 위쪽에 불법건축물인 비가림막(붉은 점선 부분)이 설치돼 있다. 이 가림막은 화재 때 연기를 배출하지 못하고 통로 역할을 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뉴시스

불법 증·개축 건물 실태

오래 영업할수록 수익이
과태료보다 많아 ‘성행’

서울 지역만 최근 3년간
5만여건 위반 새로 적발

화재에 취약한 점이 문제
처벌과 감시 강화해야

“이게 불법으로 증축된 건물인지는 몰랐지.”

29일 오후 서울의 한 재래시장에서 만난 정모(60·여)씨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시장길은 상점들이 철골 구조물을 잇대 놓아 걷기가 어려울 정도로 좁았다. 아동복 판매점과 노점상 사이 폭은 약 2.16m. 정씨는 “소방차도 못 들어오는데 불이 난다고 상상하니 아찔하다”고 말했다.

불법 증·개축 건물은 한국사회의 안전불감증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화마(火魔)로 39명이 목숨을 잃은 경남 밀양 세종병원의 신고 연면적은 1489㎡이었지만 10% 이상을 불법 증축했다. 증축한 곳은 주로 창고나 식당 등으로 사용했다. 얼마 전 화재가 발생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와 서울 종로 여관 역시 불법 증·개축 건물이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불법 증·개축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이행강제금은 건축물 시가표준액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에 위반면적을 곱한 금액 이하의 범위에서 부과할 수 있다. 서울 중구청 관계자는 “이행강제금으로 부과할 수 있는 금액이 적어 불법 증·개축을 하고 오래 버티며 영업할수록 실질적인 과태료는 줄어드는 구조”라며 “상권 좋은 곳에서는 과태료를 내더라도 계속 영업하는 게 이익이라 여긴다”고 말했다.

전철수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신규 적발된 위반건축물은 5만여건에 이른다. 무허가(신고) 건축물이 90.7%(4만3815건), 무단 용도변경 2.9%(1397건), 무단대수선(방쪼개기) 0.9%(419건), 사전입주 0.4%(2238건)이었다. 전국으로 확대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불법으로 건물을 증·개축할 경우 법적 시설기준에서 벗어난 사각지대가 생겨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 자체가 불법이어서 관리대상이 아니라 철거해야할 대상인 데다, 안전을 위해 비워둬야 할 통로나 출구에 얼기설기 손을 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불법 증축물의 경우) 소방시설이나 피난시설에 대한 기준 적용이 안 돼 있는 상태일 것”이라며 “값싼 재료 또는 허가 안 된 재료를 증축에 사용할 확률도 높아 화재가 나면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불법 증·개축에 대한 처벌 강도를 높이고 감시를 철저히 하는 게 해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박경서 서울시 건축기획과장은 “이행강제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며 “지난해 국토부에 이행강제금 할증을 건의했는데 법령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건물 외부가 불법 증축이 된 부분은 이를 확인하고 지도 단속하는데, 내부의 불법증축이나 개조 등 공간을 변경해서 쓰는 경우는 확인이 어렵다”며 “다중이용시설 혹은 어린아이 노인 등이 많이 찾는 시설물에 대해선 공간의 용도변경, 시설변경, 불법 증·개축을 점검하고 지도·단속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재호 이택현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