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계속되는 혹한의 추위가 한반도를 점령했다. 지난 23일부터 이어진 한파가 일주일째 계속되며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다. 추위를 느끼는 정도는 모두 비슷하겠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묵묵히 추위를 버텨내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가정이 보일러를 사용하는 요즘이지만 아직도 연탄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바로 서울 노원구 중계동 불암산 자락에 위치한 서울 마지막 달동네 중계동 104번지(이하 백사마을) 주민들이다. 혹한의 추위를 벗 삼아 살아가는 그들의 ‘하루’를 담았다.
30년 가까이 이 곳에 거주한 변영길(61)씨는 기자가 왔다는 말에 서러움을 토했다. 그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에서 삶의 고통이 느껴졌다. 백사마을에서 겨울을 버틴다는 것, 그건 참으로 힘든 일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는 일용직 건설현장 근로자다. 하루하루 번 돈으로 겨우 하루를 살아간다.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난로에 피운 연탄의 불씨가 꺼졌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집을 지키는 얇은 미닫이문은 외풍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집 안의 한 쪽은 큰 대형 난로가 자리하고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난로가 낯설었다.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전기 히터에 전원을 켠다. 이마저도 전기세가 비싸 마음 편히 켜질 못한다. 하지만 따뜻해진 보금자리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안방에 직접 달은 외풍용 커튼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는 "우리 집이다"라고 말했다.
김희순(80)씨는 폐지를 주우며 살아간다. 연일 계속되는 한파에 5일 동안 일도 못 나가고 이불 속에서만 하루를 보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보일러마저 고장이 나 5만 원을 주고 고쳤다. 근근이 하루를 살아가는 그녀에겐 5만 원은 큰 돈이다. 하지만 집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그녀가 집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난로 위에 말린 빨래가 잘 말랐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세탁기가 없어 맨손으로 빨래를 한다. 말릴 곳이 변변치 않아 주방 싱크대에 빨래를 널어놓지만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취재에 응해준 것에 감사함을 느껴 사 들고 간 쌀 한 포대에 고맙다며 문 앞까지 나와 잘 가라며 배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50년째 이곳에서 상회를 운영하는 오경숙(85)씨의 취미는 집 앞 의자에 앉아 마을 주민들과 인사하고 담소를 나누는 것이다. 남편과 사별 후 홀로 사는 적적함을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행복을 찾았다. 연일 계속되는 추위에 한 동안 나가보지를 못 했지만 오늘은 장갑 안에 비닐장갑을 덧끼고 나왔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아보지만 그것도 잠시, 오래 있기엔 혹한의 추위가 매섭다. 그녀는 "이 곳도 예전엔 장사도 잘되고 사람들이 붐볐어, 근데 죄다 아파트가 들어서고서 이 동네는 죽었어...'라며 말 끝을 흐렸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소중한 보금자리로 들어갔다.
48년째 거주 중인 서춘자(78)씨가 집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침대 위 전기장판에 전원을 켜는 일이다. 문을 걸어 잠가 보지만 외풍을 막지 못한다. 연탄만으론 이 추위를 견디기엔 너무나 부족했다. 그래도 집이 있음에 감사하다. 겨울 보내시기엔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추운 겨울이지만 연탄은행 등 봉사단체에서 지원해줘 마음 만은 늘 따뜻하다”며 웃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