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지난해 초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되기 나흘 전 신원미상의 한국계 미국인을 만났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고 AP통신 등이 29일 보도했다.
김정남 암살 관련 공판이 열린 29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샤알람 고등법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현지 경찰 수사 책임자 완 아지룰 니잠 체 완 아지즈는 김정남이 지난해 2월 9일 말레이시아 휴양지 랑카위의 호텔에서 한국계 미국인 남성을 만났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앞서 6일 마카오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입국했고 이틀 뒤인 8일 랑카위로 넘어갔다고 완 아지룰은 설명했다. 김정남은 12일 쿠알라룸푸르로 돌아왔고 다음날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마카오행 항공편 출국을 기다리다 화학무기 공격을 받고 숨졌다. 이날 재판은 당시 김정남의 얼굴에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숨지게 한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6·여)와 베트남인 도안 티 흐엉(30·여)의 살인 혐의에 대한 공판이다.
앞서 일본 아사히신문은 김정남이 랑카위에서 방콕에 거점을 둔 미국 정보요원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완 아지룰의 증언은 아이샤의 변호인이 아사히 보도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면서 나왔다. 아사히는 김정은이 피살 당시 갖고 있던 가방에서 나온 노트북 컴퓨터의 말레이시아 측 분석 결과를 인용하며 김정은이 정보요원에게 많은 정보를 건넸을 것으로 추정했다.
완 아지룰은 김정남의 노트북 컴퓨터를 연구소로 보내 분석한 사실을 인정하며 컴퓨터가 2월 9일 마지막으로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컴퓨터에서는 USB 메모리를 꽂은 뒤 일부 데이터에 접근한 흔적이 발견됐다. 완 아지룰은 하지만 김정은이 신원미상 남성에게 자료를 넘겼는지, 랑카위에서의 일이 피살과 관계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남이 만난) 남성의 신원은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았다”며 두 사람이 만난 호텔의 이름과 호텔방 예약자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만남이 김정남의 가방에서 발견된 13만8000달러와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아이샤의 변호인은 완 아지룰에게 “당신은 기억력에 완벽히 문제가 있다”며 “당신은 수사를 했다면서 어떻게 모든 걸 잊어버리느냐”고 질타했다. 또 “그게 이 사건과 관계가 없다면 뭘 수사하고 있는 거냐”고 지적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김정남, 피살 전 한국계 미국인 만났다"…북한 정보 넘겼나
입력 2018-01-29 2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