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조성 및 세금 탈루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이중근(77) 부영그룹 회장이 29일 검찰 소환에 결국 불응했다. 검찰은 곧바로 30일 재소환을 통보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검사 구상엽)는 이날 오전 10시 이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조사하려 했다. 검찰이 부영그룹 수사에 착수한 지 1년10개월 만이다. 그러나 이 회장이 소환에 불응하면서 조사는 또 다시 미뤄지게 됐다.
이 회장의 불출석은 예견된 일이었다. 이 회장 측은 전날 건강을 이유로 출석연기신청서를 제출하며 다음 소환 일자가 잡힐 경우 출석해 성실히 조사받겠다고 했다. 검찰은 “지난 24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소환을 통보했다”며 연기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이 회장은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검찰은 즉각 이 회장에게 30일 출석할 것을 다시 통보했다.
이 회장은 부인 명의 페이퍼컴퍼니를 계열사 거래 과정에 끼워 넣은 뒤 100억원대 ‘통행세’를 챙겨 이를 비자금 조성에 활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가족 명의 회사를 통한 수십억원대 세금 탈루는 물론 임대 주택 분양가를 과도하게 높여 불법 분양을 벌인 혐의도 있다.
검찰은 지난 9일 부영그룹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수사 칼끝은 이미 이중근 회장을 직접 겨냥하고 있었다. 핵심 경영진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도 내려진 상태다. 국세청은 2016년 4월 이 회장이 가족 명의 회사를 통해 수십억원대 세금을 탈루한 혐의를 포착해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해 6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부영그룹이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지정 자료를 내면서 이 회장 친척이 운영하는 계열사 7곳의 차명지분현황을 고의 누락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위장계열사를 통해 청소 용역 등 일감을 몰아준 혐의도 제기돼 있다.
검찰의 움직임은 정권이 교체되고 서울중앙지검이 윤석열 검사장 체제로 정비된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됐다. 서울중앙지검은 같은 해 8월 특수1부에 배당돼 있던 국세청 고발사건을 공정거래조세조사부에 재배당하면서 공정위 고발건과 병합 조사를 시작했다. 검찰은 고발 관련 수사를 진행하던 중 제기된 이 회장의 회사자금 유용 등 개인비리 의혹도 내사해 왔다. 수사는 부영 경영비리 전반으로 확대된 상황이다.
검찰 관계자는 “국세청과 공정위 고발 건뿐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파악된 횡령이나 서민 상대 임대주택 불법 분양 이슈 등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영 측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 등이 속한 법무법인 서평을 이번 사건의 변호인으로 선임하는 등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려 검찰 수사에 대비해 왔다.
재계순위 16위인 부영그룹은 ‘건설업계 갑질’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문재인정부 들어 기업 수사의 첫 타깃이 됐다. 이 회장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해 처음 고발한 대기업 총수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