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한파 연일 기승… 서울서만 수천건 수도관 동파
아파트마다 ‘세탁 자제’ 방송
다용도실 세탁기 호스 얼어
뜨거운 물 부었다가 고장도
상수도본부, 일반직까지
수도계량기 교체 긴급 투입
청주선 노숙인 숨진 채 발견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를 밑도는 ‘최강한파’가 이어지며 아파트 하수도관이 얼어붙어 세탁용수가 역류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의 수도계량기 동파 건수는 수천 건에 달했다. 주거 취약계층인 노숙인, 쪽방촌 주민들은 더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서울 중랑구의 아파트 주민 A씨(57·여)는 지난 26일 황당한 일을 겪었다. 다용도실에 들여놓은 세탁기 호스에 남아 있던 물이 얼어버려 뜨거운 물로 억지로 녹여보려다 세탁기를 고장내버렸다. A씨는 “다용도실에 들여다 놓은 세탁기도 얼어버릴지 몰랐다”며 ”세탁기를 수리할 때까지는 손빨래를 해야 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B아파트에는 한파 기간 세탁기 사용 자제를 요청하는 안내문이 나붙었다. 꼭 필요한 경우 기온이 다소 올라가는 낮 시간에 온수와 냉수를 섞어 사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C아파트는 얼어붙은 하수도로 내려가던 세탁용수가 역류해 저층 세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세탁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문을 붙여도 소용없었다. 한 아파트 관리인은 “주민들이 세탁하는 가구를 찾아내라고 성화지만 방법이 없다”며 “찾아내면 손해배상 청구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도봉구에서 동전세탁소를 운영하는 D씨도 “여기 세탁하러 오신 고객들이 너무 많아서 지금 난리가 났다”며 “세탁기가 얼어서 빨래하러 왔다는 사람이 오늘만 20명이 넘었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면서 시작된 이번 한파는 27일까지 닷새 내내 서울 기준으로 최저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돌았다. 특히 26일에는 서울 기준 최저기온이 영하 17.8도까지 내려가 올겨울 들어 제일 매서운 추위를 보였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 기간 수도관 동파 신고 건수만 2347건에 이른다. 특히 추위가 절정에 달한 26∼27일에만 1687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상수도사업본부 관계자는 “통상 기온이 영하 15도 아래로 내려가면 동파 위험성이 있다고 본다”며 “이번에는 서울 온도가 최저 영하 17.8도까지 내려가 수도관 동파가 빈번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수도계량기 교체원 74명만으로는 일손이 달려 27일부터 본부 일반직원 250여명도 긴급 투입해 작업에 나서고 있다. 상수도사업본부 관계자는 “얼어붙은 수도계량기 좌우에 수건을 대고 끓는 물을 부어 얼음을 녹이지만 수도관 깊은 곳이 얼어붙으면 설비업체를 불러야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노숙인들은 더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26일 찾은 서울역 연결통로에선 노숙인 4, 5명만이 패딩과 목도리 등으로 꽁꽁 감싼 채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서울역 일대 서울시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 관계는 “밖에서 자는 노숙인이 거의 없고 대부분 희망지원센터에 들어와 잤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에서는 26일 교량 아래서 텐트를 치고 생활하던 노숙인 E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E씨가 텐트에서 잠을 자다가 동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