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화재 재난 매뉴얼 ‘먹통’
대부분 ‘중증분류표’ 작성 안해
25명 보내며 표식 없이 통보만
병원 상태 몰라 처음부터 진료
현장 응급의료소 제구실 논란
긴급·응급·비응급·사망 표식
한시 급한 골든타임에 필수적
189명의 사상자를 낸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고 당시 사상자에 대한 중증도 분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중증도 분류는 환자를 이송받는 병원이 중증 환자에게 재빨리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해 소생률을 높이는 응급 재난대응 필수 조치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서는 일부 병원에 중증도 분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의사가 처음부터 진료를 다시 하는 등 혼선이 빚어졌다.
국민일보가 사상자가 이송된 병원을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 다수의 병원에서 중증분류표를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병원 간호사는 “중증분류표나 표식을 전혀 받지 못했다”며 “이 때문에 조치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고 토로했다. 다른 병원 관계자도 “유독가스를 들이마신 환자 25명이 이송됐지만 환자 이송 통보만 받았을 뿐 분류표는 받지 못했다”고 했다. 또 다른 병원 응급실 관계자는 “중증분류표를 본 기억이 없다”며 “화재 현장에서 판단한 기준이 아니라 우리 병원에서 처음부터 상태를 다시 확인해 조치했다”고 말했다. 부상자 다수가 이송된 한 병원 간호사는 “중증분류표를 받기는 했지만 119만 가져오고 사설 업체는 안 가져왔다”며 “중증분류표가 온 환자에 대해서는 상태를 바로 파악해 진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재난사고 시 보건 당국과 소방 당국은 현장 응급의료소를 설치, 재난 상황을 고려해 사상자 중증도 분류에 나선 뒤 응급처치와 이송을 해야 한다.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소방청 재난 매뉴얼에도 대형 재난 때 긴급한 환자는 빨간색, 응급환자는 노란색, 사망자는 검은색 분류표나 띠 스티커 등을 부착토록 규정돼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재난 상황에서 중증도를 분류하는 것은 가장 기본이 되는 활동”이라며 “재난대응 훈련을 할 때도 다 하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보건소 관계자는 “분류표처럼 눈에 보이는 표시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임의의 분류 방식을 통해 자리별로 분류를 했다”며 “직원을 통해 중증분류표를 전달했다”고 해명했다. 소방 관계자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 당시 대부분의 병원은 이를 전달받지 못했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번 화재처럼 급박한 상황에서는 환자가 구조되는 대로 병원으로 옮기기 바쁜 경우가 많다”며 “환자 상태에 대한 분류 없이 구조 및 이송이 이뤄지면 피해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에 평시에 환자별 대피 계획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밀양=허경구 방극렬 황윤태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