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첫 발인… 분향소 표정
“검진 권유에 퇴원 미뤘다가…”
갖가지 사연 유족들 오열
밀양·김해 4곳서 7명 발인 엄수
기차 2번 갈아타고… 자녀 함께…
밀양문화체육회관 합동분향소
시민 4000여명 조문 발길 이어져
사고 당일 퇴원할 예정이었던 박이선(93·여)씨는 휠체어가 아니라 어둡고 꽉 막힌 관 속에서 가족들을 맞았다. 28일 오전 7시30분 밀양농협장례식장에서 진행된 발인에서 박씨의 자녀들은 “어머니”라거나 “엄마, 사랑해”라고 외치며 관을 붙들었다. 곁에 서 있던 칠순이 넘은 아들은 “고생했어”라는 짤막한 인사말을 건넸다. 26일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 희생자 중 처음으로 장례를 치른 박씨는 폐가 좋지 않아 3주 전부터 세종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으나 상태가 호전돼 사고 당일 퇴원 예정이었던 사실이 알려지며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어 현수금(89·여)씨의 장례도 엄숙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현씨는 허리 협착증으로 입원해 지난 22일 퇴원 예정이었지만 의료진이 추가 검진을 권하면서 퇴원 일자를 일주일 뒤로 미뤘다가 변을 당했다. 가족들은 고인의 관이 화장로로 들어서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 몸을 비틀거리며 얼굴을 감쌌다. 다른 유족 20여명도 침울한 표정으로 눈물을 훔치거나 소리 없이 흐느꼈다.
이날 밀양시 2곳과 김해시 2곳의 장례식장에 안치된 희생자 7명에 대한 발인이 진행됐다. 이어 29일에는 14명, 30일 12명의 발인이 예정돼 있다. 31일까지는 상당수 희생자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참사로 희생된 38명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밀양문화체육회관에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틀째 이어졌다. 전날 밤 창원삼성병원으로 옮겨졌던 중상자 가운데 문모(47·여)씨가 사망함에 따라 분향소 제단 위에는 영정사진과 위패가 늘어났다.
헌화를 마친 일부 조문객은 유족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네며 슬픔을 나눴다. 추모에 동참하기 위해 경기도 성남에서 기차를 2번이나 갈아타고 왔다는 홍종남(73·여)씨는 여동생홍종연(64)씨와 함께 “뉴스로 사고소식을 접하고 너무 마음이 아파 달려왔다”며 “그나마 봉사자 등 여러분들이 슬픈 일을 극복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말했다.
이번 참사로 50년 지기를 잃었다는 시민도 있었다. 그는 영정 속 친구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화재 전날 희생자인 친구와 통화했다는 그는 화재 소식을 듣고 걱정되는 마음에 연신 전화와 카카오톡 메시지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끝내 답이 없었다고 전했다.
부산에서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조문하러 온 이지영(40·여)씨는 “아이들이 안타깝고 잘못된 일에 대한 경각심을 가졌으면 해서 왔다”고 말했다. 친구의 어머니가 목숨을 잃었다는 한 시민도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합동분향소에는 유치원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이른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밀양시는 이날 오후까지 4000여명이 넘는 시민이 합동분향소를 찾아 슬픔을 나눴다고 밝혔다.
화재 참사로 밀양시 전체는 추모 분위기에 잠겼다. 주말이면 상인과 손님들로 활기를 띠었던 전통 시장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한산했고 주변 상가 일부는 아예 문을 닫은 채 영업을 하지 않았다.
밀양=조원일 기자 wcho@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