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성현 “실력대로 뽑아야 하지 않나… 이런 게 올림픽이냐”

입력 2018-01-28 16:25 수정 2018-01-28 16:49
알파인스키 경성현 선수. 뉴시스

“아직까지 대한스키협회의 공식 사과나 통보를 받지 못했습니다. 자력 출전권까지 확보한 저를 무슨 근거로 떨어뜨렸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 명단에서 제외된 알파인 스키 선수 경성현(28·홍천군청)은 2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울분을 토해냈다. 그는 “감독님을 통해 제가 올림픽에 나갈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날(25일) 저녁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짐을 챙겨 대표팀 숙소에서 나왔다”며 “너무 허무하고 억울하다. 다시 스키를 탈 엄두가 안 난다. 지금은 선수 생활을 관두고 싶은 생각뿐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스키협회는 지난 25일 평창올림픽에 나설 4명(국가 쿼터 2장·개최국 쿼터 2장)의 선수명단을 발표했다. 당초 올림픽 알파인 스키에 9명이 나설 계획이다. 그러나 대표팀이 추가로 자력 출전권을 얻지 못하면서 5명의 선수가 명단에서 제외됐다. 협회는 뒤늦게 경기력향상위원회 회의를 거쳐 출전권을 재배분했다. 경성현은 기술 종목(회전·대회전)에서 자력 출전권을 확보했음에도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경성현은 “협회가 공정한 기준도 없이 선수의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평창에 나갈 선수를 정한 것이 화가 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정선 알파인 경기장에서 열리는 스피드 종목(슈퍼대회전·활강)에 나설 선수가 필요해서 저를 안 뽑았다고 하는데, 올림픽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실력 순으로 선수를 뽑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경성현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도 “스피드에 선발된 선수와 내 세계랭킹 차이는 무려 300위 이상이다. 난 100위권, 그 선수는 400위권”이라고 말했다.

이미 경성현은 대표팀 단복을 지급받았고, 협회 발표 전날 평창 선수단 결단식에도 참가했다. 하지만 협회의 무지로 평생의 꿈이 무산됐다. 그는 “최소 한두 달 전에 선수에 공표해줘야 했다. 저는 올 시즌 스피드 종목을 아예 뛰지 않았다. 협회 내부 방침을 일찍 알았으면 종목을 바꿔서 뛰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최근 국제스키연맹(FIS) 극동컵에 시험 삼아 스피드 종목에 출전했다. 올 시즌 첫 출전이라 FIS 랭킹포인트가 부족해서 거의 꼴찌로 출발했는데도 한국 선수 중 가장 잘 탔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더구나 경성현을 비롯한 5명의 선수는 아직 협회의 공식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경성현은 “선수 입장에서는 납득할만한 이유를 들고 와서 설명해야 수긍하지 않겠나. 그런 절차 하나 없이, 아무 말도 없이 이렇게 사람 하나를 바보로 만들어버렸다”며 “평생 바라보고 한 건데 정말 어이없다. 선수는 지난 수년간 고생만 한 것이다”고 말했다.

경성현이 SNS에 올린 내용. 인스타그램 캡처

혹시 경성현도 스피드스케이팅의 노선영처럼 막판 극적으로 구제되는 일은 없을까. 협회 관계자는 이날 “FIS에 올림픽에 나설 최종 명단을 이미 대한체육회를 통해 제출(29일 오전 6시 최종 마감)했다. 명단이 바뀔 소지는 없다”고 전했다. 선수들에게 공식 통보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그냥 단순히 전화로 미안하다고 사과하기엔 너무 예의가 없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금 정중히 사과하는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내부 논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스키협회는 올림픽 출전 관련 대표 선발 규정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팬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국가대표 선발규정은 있다. 다만 올림픽 대표는 FIS 출전 요건을 따르기에 별도 규정이 없다”고 답했다. 협회가 뚜렷한 기준 없이 내부 방침을 정한 것이 결국 화를 불러일으킨 셈이다.

한 스키인은 “협회의 국가대표 선수 및 지도자 선발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것은 스키계 내부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고위급 임원들의 눈치를 보느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뿐”이라며 “이번 기회에 스키협회도 대내외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올림픽 출전 선수 선발 절차상의 문제를 거론한 경성현의 아버지 경화수씨는 법원에 스키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29일 내기로 했다. 앞서 경성현의 소속팀 홍천군청도 이번 사태를 문제 삼아 팀 해체를 하겠다고 반발한 바 있다.

박구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