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화재] “노인들 살려달라 외치며 2·3층서 뛰어내려”

입력 2018-01-27 07:58
소방대원들이 26일 오전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 화재 현장에서 구조된 환자들을 인근의 다른 병원으로 긴급 이송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제공

입원환자·주민들이 밝힌 긴박했던 화재 현장

병원 2층서 구조된 70대
“엘리베이터서 검은 연기
건너편 병실엔 불길이 어른”

3분 만에 현장 도착한 구조대
화염·연기로 1층 진입 실패
건물 측면 2층부터 구조 시작
신고 90분 만에 큰 불길 잡아

긴박한 순간 병원에 있었던 이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화재 당시를 증언했다. 인근 주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안타까워했고 일부는 병원으로 달려가 구조를 도왔다.

26일 밀양 세종병원 2층에 있다가 윤병원으로 이송된 박순자(71·여)씨는 화재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박씨는 “화재경보기가 울리자 환자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간호사가 펄펄 뛰며 빨리 나오라고 소리쳤다”며 “천장 전등은 깜빡였고, 엘리베이터도 작동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창문을 열고 소리치다 119대원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사다리를 가져다줘 대피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병원 2층에서 구조된 최옥순(77·여)씨도 “엘리베이터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고, 건너편 병실에는 불길이 어른거리고 있었다”며 “5명이 탈출을 시도해 4명이 성공했다”고 말했다.

병원 앞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강인환(38)씨는 “사람들이 ‘살려 달라’고 외치는 소리에 놀라 뛰쳐나가 요양병원 환자들을 대피시켰다”고 말했다. 화재 당시 병원 앞을 지나고 있었다는 조인서(30)씨는 “불길이 치솟자 2층, 3층에서 노인들이 살려 달라고 고함을 쳤고 일부는 2층, 3층에서 땅바닥으로 뛰어내렸다”고 급박한 모습을 전했다.

화재 발생 신고가 소방당국에 처음으로 접수된 것은 오전 7시32분이었다. 화재신고 접수 3분 후 소방당국 선착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7시45분쯤에는 1층으로 진입을 시도했으나 거센 화염과 연기로 진입이 쉽지 않았고 소방대는 건물 측면을 통해 2층의 환자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인근에서 화재를 목격한 커피숍 운영자 정모(54)씨는 “갑자기 매캐한 연기가 거리에 퍼지면서 2차선 도로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소방차 10대가 도착했고 화재 진입로를 확보했다. 마침내 8시15분쯤 소방인력이 병원 1층과 4층에 진입했다. 인명구조가 본격화되는 순간이었다. 구조대에 의해 구조된 환자들은 윤병원과 밀양병원, 나노병원, 밀양제일병원 등 인근 의료기관으로 긴급 후송됐다. 하지만 중환자나 노인환자가 많아 병원으로 이송됐음에도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불이 번질 것을 대비해 거동이 불편한 노인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 옆 요양병원의 환자를 대피하는 데 인력을 집중시켰다. 8시45분쯤에는 요양병원 환자 전원을 대피시켰다. 요양병원에서 환자들을 간호하고 있던 강달이(68·여) 요양보호사는 “불이 나자 환자들을 들쳐 안고 계단으로 내려왔다”며 “당시 상황이 너무 급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9시가 지나면서 큰 불길을 잡은 소방대원들은 9시18분쯤에는 병원 모든 층에 대한 인명 검색작업을 끝냈다. 9시29분엔 초기 진화가 완료됐다. 화재발생 후 2시간도 채 흐르지 않은 시각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안타까워하던 일부 주민은 눈물까지 흘렸다. 박모(62)씨는 “눈앞에 보이는 병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고 하니 너무 참담하다”며 “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밀양=이영재 조원일 허경구 기자 yj3119@kmib.co.kr